국제관계학 전공인 김 교수가 역사책을 펴낸 이유가 궁금했다.
“소련 붕괴이후 국제정치학 분야에서 많은 반성이 있었습니다. 과학적 통계와 각종 시뮬레이션으로 무장한 이론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아무도 소련의 붕괴를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최근엔 ‘역사로 돌아가자’는 분위기가 높습니다. 역사적 통찰력을 통해 국제적 역학관계와 전망을 알아보자는 것이죠.”
그는 이 책에서 ‘대서양 문명’과 ‘표준’이라는 독특한 키워드를 연결시키며 자신의 거대담론을 펴나가고 있다.
“포르투칼→에스파냐(스페인)→네덜란드→프랑스→영국→미국으로 이어진 대서양 문명이 현재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각각 다른 표준을 갖고 세계를 지배했죠. 하지만 하나의 표준이 쇠퇴한다고 해도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새로 등장하는 표준에 의해 흡수 계승돼 왔습니다. 저는 각 표준들이 왜 흥하고 망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세계로 확산됐는지에 중점을 두고 역사를 바라본거죠.”
이 점에서 그는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나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과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지만 결론은 다르다. 하나의 문명이 세계적 표준이 되기 위해서는 충돌 대신 흡수와 융합을 해야하며 한 표준의 쇠퇴는 새로운 표준의 성립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서양 문명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서양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이름 아래 동양을 왜곡된 시선으로 쳐다봤다고 비판하지만 동양, 특히 우리나라는 서양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화’를 외치지만 서구 문명과 세계적 표준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어떻게 세계화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현재 주변국인 우리가 문명과 세계적 표준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고 주변국에서 벗어나 또다른 의미의 세계화를 성공시킨 강소국(작지만 강한 국가)이 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서 ‘문명’이라는 거대담론을 통해 서양사와 세계적 표준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페르시아라는 대국의 도전에 직면했던 아테네, 이슬람 문명의 도전에 맞섰던 베네치아처럼 스스로 표준을 확립하며 세계화에 동참했던 사례가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태평양 문명사’를 집필할 계획이다. 마젤란에 의해 태평양이 역사 속으로 들어온 이래 미래 태평양을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헤게모니 싸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을 예정이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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