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워낙 많아서인지는 몰라도 미국에서는 에이즈를 ‘까다로운 질병’쯤으로 보는 편이다. 에이즈 환자는 병에 걸린 사실을 떳떳하게 밝히고 치료 받는다. 법에도 에이즈에 감염되었다고 해서 차별하지 못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시민의식이 이 정도니 영화 제목을 ‘필라델피아’라고 붙여도 시빗거리가 안 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그럴까. 아닐 게다. 에이즈 영화를 만들어놓고 ‘서울’ ‘대전’ 식으로 이름 붙였다가는 ‘난리’가 나도 몇 번은 났을 게다.
▷미국과는 달리 이 땅에서 에이즈에 걸린 사람은 환자가 아니라 ‘죄인’이다. 감염 사실이 드러난 순간부터 그는 멸시와 기피 대상이며 사회에서 격리되어 버린다. 이 때문에 멀쩡한 사람이 몸에 생긴 반점을 에이즈 증상으로 지레짐작해 딸과 동반자살하는가 하면 ‘밤마다 열과 식은땀이 나는 게 이상하다’며 목을 맨 사람도 있다. 에이즈가 문란한 성 접촉으로 가장 많이 걸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혈, 장기이식 등으로 인해 옮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최근에는 에이즈 환자에게 주사를 놓던 의사와 간호사가 바늘에 찔려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올 9월말 현재 우리나라 에이즈 환자는 1515명이다. 아직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일도 아니다. 태국만 해도 첫 환자가 나온 뒤 단 14년 만에 13만명으로 늘었다지 않는가. 오늘 ‘에이즈의 날’을 맞아 동아일보는 한국에이즈예방재단과 함께 예방캠페인에 들어간다. 무엇보다 에이즈를 ‘남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그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최화경논설위원>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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