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부담으로 150조원이 투입된 공적자금에 대해 감사원이 광범위한 감사를 통해 상당한 실적을 올린 점은 인정할 만하지만 정작 정책 잘못에 대한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이 제대로 돼있지 않다. 예금보험공사나 자산관리공사 등 급조된 기구가 처음 하는 일을 처리하다 보면 실수도 있을 수 있고 손발의 모럴해저드로 인한 손실은 정책 잘못의 비용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러나 뻔히 잘못인 줄 알면서도 내린 정책 결정은 해악이 훨씬 크다.
정책 결정이 잘못된 대표적인 사례를 들자면 대한종금과 나라종금의 영업을 재개시켜 손실을 키운 것이다. 두 종금사는 영업 재개허가를 받았다가 1, 2년 뒤 문을 닫으면서 부실 규모가 늘어나 공적자금 부담이 2조3000여억원이나 늘어났다.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부실 종금사를 살려준 것은 최종적으로 금융감독위원회이지만 이러한 무모한 결정 뒤에는 으레 정치권이 의심을 받는다. 그래서 관치금융보다 정치금융이 더 나쁘다는 말도 있다. 신용협동조합 예금을 예금보호대상에 포함시킨 것도 그냥 이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적자금을 먹는 블랙홀인 대우그룹 등 대형 부실의 배후에도 관치금융 정치금융이 있다.
은행에 엄청난 손실을 입힌 부실기업 소유주 5200여명이 7조원이 넘는 재산을 국내외에 은닉시키는 일이 가능한 것은 은행이나 예금보험공사가 계좌 추적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부도를 내고 은행 대출을 갚지 않으면서 재산을 숨겨둔 기업주들에 대해서는 상시 계좌 추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현 단계에서 공적자금을 추가 조성할 필요가 없다고 밝히고 있으나 믿기 어렵다. 이헌재 재경부 장관 시절에도 더 이상의 공적자금은 없다고 큰소리치더니 필요가 생기자 장관을 바꾸고 조성했다.
공적자금을 더 이상 새로 조성해서는 안 된다. 공적자금이 새는 구멍을 막고 회수율을 높이면 복병이 터져 나오더라도 재투입을 통해 충당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 위기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부실금융기관은 시장에 맡겨 퇴출시키는 것이 공적자금을 아끼고 금융산업을 강하게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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