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보 기자의 반집&한집]백 '테러' 단호히 응징

  • 입력 2001년 12월 2일 18시 33분


▣농심배 세계바둑최강전 8국 유창혁9단 對 나카노 히로나리9단

흑 1. “어때, 이 쯤 중앙을 지키면 내가 유리하겠지. 열집은 더 남는 것 같은데.”

백 2. “무슨 말씀. 중앙이 다 집이 되면 난 뭐 먹고 살게. 중앙을 다 깨버려야지.”

흑 3. “평소엔 악수지만 백 2를 공격하려고 이렇게 둔다. 너 빨리 달아나.”

백 4. “달아나는 건 좀 뒤로 미루고 일단 챙겨두지 뭐, 고마워.”

흑 5. “내가 참는다, 참아. 콱 다잡아 버릴까 하다가 불쌍해서. ‘가’로 물러나. 안 그러면 잡으러 간다.”

백 6. “천만에. 네가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며. 그 실력 한 번 보자. 잡을테면 잡아봐.” 아마추어끼리 대국을 한다면 장면도와 같이 둘 때 아마 이런 입담을 나눴을 법 하다.


백-나카노9단 흑-유창혁9단

11월29일 열린 제3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8국. 일본의 나카노 히로나리 9단과 한국의 유창혁 9단의 대결. 일본 선수단은 아와지 슈조 9단, 고바야시 고이치 9단, 야마시타 게고 7단 등 3명이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줄줄이 패하다가 나카노 9단이 전날 중국의 뤄시허 8단에게 이겨 겨우 1승을 거둔 처지. 이 바둑을 지면 일본 선수는 가토 마사오 9단 1명만 남게 된다. 그러나 상대는 막강한 유 9단. 한국 선수단은 이미 낙승을 예견하고 있었다.

흑을 잡은 유 9단이 초반부터 조금씩 벌어들여 유리한 형세. 유 9단이 흑 1로 중앙집을 지켜려고 하자 나카노 9단이 승부수를 던진 장면. 그는 백 2로 깊숙히 뛰어든 뒤 흑 5로 치받을 때 ‘가’로 물러나지 않고 한술 더 떠 백 6으로 중앙 흑진에 쑥 들어가 버렸다.

유 9단 얼굴에 곤혹스러운 표정이 스친다. ‘이렇게 심할 수 있느냐’는 분노도 섞여 있지만 이 돌을 몰아가다가 한번 삐끗하면 그대로 역전이기 때문에 순순히 물러나지 않고 달려드는 상대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가’로 막아 공격이 시작됐다. 관전자가 보기엔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지만 ‘세계 최고의 공격수’답게 중앙 말을 세차게 몰아부쳐 끝내 잡아버렸다. 중앙을 잡고나자 승부는 결정됐다. 목산으로 해도 반면 15집이상 차이. 조금만 불리해도 돌을 싹싹하게 거둔다는 나카노 9단이지만 이 바둑만큼은 던질 기분이 나지 않았는지 끝까지 계가를 해본다. 303수만에 흑 11집반승.

3차 대회는 내년 2월 5일부터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다.

<서정보 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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