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말한다]'조금은 가난해도 좋다면' 펴낸 최용건씨

  • 입력 2001년 12월 7일 18시 11분


“비록 농사는 실패를 거듭했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무형의 양식은 마음속 곳간 깊숙이 저장되었습니다. 모두 자연과의 교감에서 얻어진 삶의 기쁨들이지요. 매일 아침 눈만뜨면 어린아이가 징검다리를 건너뛰듯 강 건너 미지의 세계로 한걸음 두걸음 다가서는 설렘으로 살고 있습니다.”

시를 읊듯 말하는 이 사람은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화가 최용건씨(53)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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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도회생활을 청산하고 강원도 산골짝에 거처를 마련한 것은 지난 96년. 아내와 함께 1년여 동안 강원도 오지를 누비고 다닌 끝에 낙점한 곳이 방태산 근처 진동리 야트막한 산기슭, 이름하여 ‘하늘밭 화실’이다. 땅 1000평을 사고 화실겸 거처를 마련한 뒤 돌투성이 밭을 일구기 시작한 지 만 5년. 농사 중에서 제일 쉽다는 옥수수농사도 실패하고 꽃이 예뻐 시작한 도라지 농사에서도 쓴 잔을 맛 보았다. 선한 인심만 믿고 시작한 무인판매에서 뒤통수를 맞았고 토종벌 양봉도 실패했다.

“이제 겨우 생활인으로 살기 위해 최소한 필요한 월수입 70만원(생활비 40만원+저축 30만원) 목표치에 근접하고 있어요. 약간의 경작과 양봉 민박집 운영으로 말이지요. 비로소 내 방식에 맞는 삶을 찾아 과감히 떠난 결과, 한층 자유롭고 풍요로운 세계를 찾은 것 같아 기쁩니다.”

그의 5년여 진동리 생활 일기 ‘조금은 가난해도 좋다면’(푸른숲)에는 도시를 떠나 작고 소박하지만 땀흘리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일상이 따스하고 겸손하게 그려져 있다.

“가난이란 무능의 소산이 아니라 깨달음의 소산인 것 같아요. 필요 이상의 욕심이라든가 삿된 기운을 모두 몰아냈을 때에 고여오는 맑고 조촐한 기쁨이랄까…. 행복이란게 욕심을 덜어 한가로워질 때 비로소 찾아오더라구요.”

도시에선 마치 지명수배자처럼 쫓기듯 살았다는 그는 그림그리는 일조차 늘 무슨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그러다 막상 물 흐르고 새 지저귀는 자연속에 들어오니 그림이란 것도 자연과의 조화로운 마음의 성정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비로소 채무감없이 붓이 들리더란다.

‘가난’을 택한 대가로 그가 얻은 것은 많다. 인적 끊긴 산길을 홀로 걸으며 ‘외로움의 끝’을 경험하고 다섯되의 콩을 얻기 위해 일군 밭두둑에서 새끼 손가락만한 생쥐의 까만 눈망울과 마주하면 ‘오! 하나님’소리가 절로 나온다.

과장과 허세 미사여구가 없는 그의 글에는 삶과 자연에 대해 겸손한 자만이 그려낼수 있는 사색과 통찰의 표현으로 가득하다.

‘노동으로 육신이 고단해지니 관절깊은 곳에서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람에 널문 여닫이는 소리가 들린다. 육신이 쇠하면 사랑도 미움도 사라지는 법, 오로지 지혜로움만 남아 하루하루를 자연과 더불어 기쁨으로 살아간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시련의 긴 터널을 지나온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 삶의 소중한 정화(精華)이다.’

직접 그린 100여컷의 진동계곡 삽화가 그의 내면을 한층 맑게 보여준다.

<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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