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황순원)과 12월(서정주) 연달아 세상을 뜬 두 사람을 회고하는 자리였다. 60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는 두 문인에 대한 강연과 소연(小宴) 등으로 조촐하게 치러졌다.
미당과 순원은 생전에 공통점이 많았다. 1915년 동갑내기였으며, 20대초인 1936년 나란히 등단했다. 문학이나 작품으로만 기억되기를 원했던 모습도 닮았다.
이런 치열한 창작의 자세가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높히는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이다.
미당의 시를 보고 문학인의 길을 결심했고, 순원의 소설을 보고 대학(경희대)를 정했다는 문학평론가 하응백씨는 이날 추모행사에 참석해 “세종대왕은 훗날 미당과 순원을 위해서 한글을 창제하셨다”는 우스개로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소설가 김원일씨는 행사 맨 앞에서 “오늘만큼은 정치적인 문제는 다 잊어버리자”고 운을 뗐다.
그러나 참석자들의 마음은 착잡한 듯 했다. 미당은 친일(親日) 부역과 신군부에 협력한 전력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고, 순원은 ‘별’ ‘소나기’ 등의 서정작가로만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역사의식의 부재로 일각의 비판을 받는 것도 이 점에 기인한다.
이날 행사에서는 전정구 교수(전북대 국문학)가 서정주 시에 녹아있는 향토성의 본질을, 박혜경 교수(명지대 국문학)가 황순원 소설에서 간과하기 쉬운 역사관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의 결론은 미당과 순원 모두 구체적인 역사를 뛰어넘는 영원함을 추구했다는 것이었다.
미당은 ‘질마재 신화’ ‘신라초’ 등에서 우리 민족의 과거에서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초(超)역사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던 반면, 순원은 ‘술’ ‘두꺼비’ ‘집’ 등을 통해 주인공의 갈등의 배경을 주목하는 후(後)역사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 자리에는 지난 봄 고은 시인의 비판으로 촉발된 ‘미당 논쟁’을 의식한 발언이 자주 나왔다. 하씨는 “최근까지도 친(親)미당파가 될 것인가, 반(反)미당파가 될 것인가, 보이지 않는 강요가 있었다”는 말로 평단의 분위기를 전했다.
미당의 애제자인 이근배 시인은 “미당은 백범 김구나 단재 신채호 같이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하던 지사나 투사가 아니라, 무지개를 쫓는 아이처럼 평생 시를 쫓았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와 관련, 전정구 교수는 “미당에 대한 대조적인 비난과 찬양은 우리 근대 시문학을 위해 절대 유익하지 않다”며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