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봉칼럼]‘불량인간’ 낳는 교육

  • 입력 2001년 12월 12일 17시 49분


어떤 불경기에도 바람을 타지 않으면서 해마다 이맘때면 경마장 바닥에서나 봄직한 아우성이 천지를 흔드는 분야가 있다. 바로 교육이다. 다른 문제 같으면 민란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일인데도 내 자식 문제로 시간을 놓칠 수 없는 급한 사정이라, 어쩔 수 없이 대입을 앞둔 가정들은 시키는 대로 따라가지 않을 수 없어 처절한 고통을 감수한다.

국민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인간보다 시민을 양성할 목적으로 서당 같은 데서 하던 교육을 직접 정부가 맡아서 개인과 국가를 바로 연결시키는 방식의 교육이 시행되어 온 지 반세기가량 된다. 그런데 그 교육제도가 모든 가정들에 불합리한 고통을 안겨주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특히 현 정부 하에서 그 고통은 해마다 도를 더해 가는 모습이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것을 두고 정부는 보다 나은 교육을 위한 개혁에 필수적인 고통이라고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것은 수사에 불과하다. 교육이 이 정부 들어 완전히 망가졌다고 보는 것은 교육현장의 안팎에서 찾아지는 거의 일치된 견해이다.

▼비범한 엘리트 필요▼

왜 그런가. 교육제도 문제의 핵심이 대학입학제도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시인하는 것이나 그것을 개혁한다는 것은 단순히 시험제도를 가지고 아무리 해봤자 개미 쳇바퀴 돌듯하여 돌파구가 찾아지지 않으려니와 물심양면에 걸쳐 막대한 낭비만 초래하고 만다. 교육이민이라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사정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학벌이 필요 없는 교육사회를 만들겠다고 한 대통령의 언급이나 교직자들의 자긍심을 송두리째 짓밟은 정책당국자의 언급 등은 가히 교육적인 허무주의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따라 학교교육의 파멸은 필지의 귀결이었다.

어차피 교육문제도 이 정부에서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어있고, 또 갈 데까지 가야만 전기가 마련될 형편임을 전제하여 생각해보는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시스템을 기초분야와 직업분야로 대별하여 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교육에 집중적인 관심을 두는 초점은 비범한 생태적 능력을 가진 엘리트를 어떻게 양성해 내느냐에 주어져 있다. 이는 분야로서는 기초분야에 해당된다. 지금 한국교육의 가장 큰 약점은 기초분야의 취약성이다. 장기적으로 이는 국력문제와 직결된다. 무릇 국력이란 철학→과학→기술→경제→군사의 순으로 다져지는 것이다.

이를 전제로 해서 보면 최근의 인문사회과학과 기초자연과학의 위기는 예사로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백화점식의 4년제 대학이 무려 200개 가까이 있지만 이 숫자가 기초인력의 양성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은 주지의 일이다.

대다수의 학생은 직업방면으로 나갈 인력이다. 이를 위해 이제는 전문대학이라는 명함을 떼어버린 2년제 대학이 수두룩한데, 이것도 정비를 해야 한다. 지금 대학교육이라는 것은 대중교육화된 지 이미 오래다. 그렇다면 이른바 전문대학 졸업생들에게 학사학위를 부여하는 데 인색하여 열등감을 안겨줄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런데 이에는 조건이 있다. 산업사회에 부합되는 직업방면의 교육도 분야에 따라서 4, 5년의 혹독한 연수를 받아야 할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교육내용의 내실화가 철저히 가해져야 한다. 머리 큰 사람들의 놀이터 같은 교육은 지양되어야 한다.

▼교육제도 내실화해야▼

이런 기본철학을 전제한다면, 지금과 같이 불량인간 대량 생산조직 같은 교육제도가 정리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양적 수요를 해결하면서 질적 향상을 가져오려면 이 도리밖에 없다고 여겨진다. 기존의 대학들도 이런 각도에서 개편되는 게 바람직하고 그래야만 고등실업자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을 나온 고등인력의 실업이 문제되고 있지만 실상 내용을 보면 고등인력이 아니라 저급인력이다. 그리고 교육개혁에는 반드시 지금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고시제도의 존폐도 아울러 고려되어야 한다.

교육과 인적자원을 중시한다 하여 해당 기관장을 부총리급으로 격상까지 시켰으나 아직 인력수급에 관한 변변한 자료 하나 없이 교육파탄만 초래한 우를 다음 정부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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