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의 감각훔치기]강북패션 '뾰족코 구두' 열풍

  • 입력 2001년 12월 12일 18시 07분


몇 달 전 한 인터넷 사이트의 동영상을 열어 보다 배꼽을 잡았다.

각각 서울 강북과 강남의 고등학생을 상징하는 만화 캐릭터 두 명이 전형적인 강남북 ‘동네 패션’을 비웃는 랩을 주고받는 내용이었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강북 학생이 “야, 넌 그 긴 힙합 바지로 동네 청소 다 하고 다니냐, 그 큰 운동화는 뭐냐, 벗겨질라♬”라고 노래하면 “넌 그 뾰족한 구두로 앞에 가는 사람 종아리 찌르겠다. 그 딱 붙는 교복바지는 뭐냐, ×구멍에 바지 끼겠다♪”고 강남 학생이 맞받아 치는 식이었다.

패션의 ‘강남북 갈등’을 논하는 것은 새롭지 않다. 아이템 하나로 ‘승부’를 가린다는 것이 우스울지 모른다. 하지만 올 겨울과 내년 봄, ‘강북 패션’의 대명사 ‘뾰족코(포인티드 토) 구두’가 유행을 선도한다는 점에서 신발만큼은 강북쪽이 트렌드를 더 잘 예견한 셈이 됐다.

잡화 토털브랜드 ‘미알’의 디자이너 황나훈씨는 “올해 복고풍 패션의 유행으로 이에 잘 어울리는 ‘뾰족코’ 열풍이 불고 있다”며 “특히 발목 바로 아래까지 올라와 복사뼈가 살짝 노출되는 예스러운 ‘슈부츠’가 큰 인기”라고 말했다.

‘텐디’의 최창엽 부장은 “‘뾰족코’ 구두는 지난해 해외 쇼 등에서부터 인기가 예견돼 왔지만 업체들이 다소 보수적인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을 분석해 가며 조심스럽게 아이템을 확장해 온 결과 올해 붐을 이루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패션 평론가 김유리(金宥利)씨는 “여성의 위상이 위축될 때는 남성적인 ‘매니시 풍’이, 반대의 경우에는 한층 여성스러운 아이템이 인기를 끈다”고 설명한다.

봄까지 ‘뾰족코’ 인기가 이어질 것이 예견되는 만큼 이 이론에 따르면 앞으로 ‘여풍(女風)’은 좀 더 거세질 전망.

‘강남북 패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사실 ‘강북 패션’의 전형과 최근 인기 상품과는 사실 코의 각도에서 큰 차를 보인다. ‘강북 패션’의 전형이 되는 신발은 끝이 지나치게 뾰족하고 끝이 살짝 들린 ‘들창코’. 이에 비해 올해 인기를 끄는 구두는 끝을 조금 더 둥글게 하고 코도 바닥에 꼭 닿는 ‘예쁜이 코’다.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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