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판은 좋게 말해 터놓고 지내는 동네다. 비밀이 없고 소문이 빨라 어디 집안에 경조사라도 생기면 영화인들도 북적댄다. 나 역시 제작부장 시절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밤을 새워 함께 빈소를 지켜준 영화 동료들을 보면서 고마웠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도 영화 동네로 이사 온 지 10여년이 넘어 이젠 친구도 선배도 후배도 꽤 늘었다. 영화하면서 그들에게 도움도 많이 받았다.
‘우노 필름’의 첫 작품은 김상진 감독의 ‘돈을 갖고 튀어라’. 상진이하고 나는 ‘미스터 맘마’ 제작부장과 조감독으로 만났다. 둘이 장소 헌팅가면서 고급차 매장을 지나다가 서로 농담삼아 “나중에 내가 영화 제작하고 니가 감독해서 저런 차 타자”며 야무진 꿈을 나눴던 적이 있다. 몇 년 뒤 내가 조그맣게 우노 필름을 차려놓고 궁리만 거듭하고 있을 때 상진이가 ‘돈을…’의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왔다. 우린 속전속결로 그 영화를 만들었고 차 살만큼의 돈은 못 벌었으나 약속대로 함께 ‘입봉’했다.
지금 내 방에는 나무판에 한자로 ‘반성중’이라고 쓴 팻말이 걸려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저게 뭔가하고 궁금해 한다. 그 나무판은 ‘무사’의 김성수 감독이 내게 준 것이다. ‘싸이더스’를 만들 무렵 우리 회사의 영화가 흥행에서 연달아 부진했을 때가 있었다. 그런 어느 날 김성수 감독이 그 팻말을 내밀었다. ‘반성해라’ 이거다. ‘더 열심히 해라. 넌 더 잘할 수 있다’라는….
나는 영화계에 들어와 여러 사람을 만났고 그들 덕에 일도 해나갈 수 있었다. 이 동네의 특징은 한번 이사 오면 여간해서 떠나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동네에서 서로 도와주고, 가끔 싸움도 해가며 열심히 살 생각이다.
<싸이더스 대표> tcha@freechal.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