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희망이다]진로 결정 "빨리" 선택 폭은 "넓게"

  • 입력 2001년 12월 14일 18시 21분


▼독일-한국보다 6년먼저 인문-실업계 구분▼

독일 교육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학생들이 진로를 조기에 결정한다는 점이다. 초등교육은 대개 4년제로 만 6세부터 시작되며 졸업 후 인문계 중등학교인 ‘김나지움’과 실업계 학교인 ‘레알슐레’, 레알슐레보다 성적이 더 낮은 학생들이 가는 실업계 학교 ‘하우프트슐레’로 나뉘어 진학한다.

한국에서는 중학교 졸업 후인 16세 때 인문계고와 실업계고로 구분하는 것에 비하면 6년이나 일찍 진로를 결정하는 셈이다.

초등학교 졸업생의 50%는 김나지움, 30%는 레알슐레, 나머지 20%는 하우프트슐레로 진학한다.

유급제도가 엄격하기 때문에 김나지움에 진학한 학생의 20% 정도는 졸업하지 못하고 탈락해 실업계로 빠진다. 끝까지 남은 학생들 중 졸업시험인 ‘아비투어’에 합격해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은 80% 정도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직업교육은 레알슐레에서 이뤄진다. 레알슐레는 5학년에서 10학년까지 6년 과정으로 전공은 4개 분야다. 학생들의 절반은 무역과 상업을 배우고 23%는 기술, 15%는 불어와 경영을 배우는 언어, 나머지 12%는 가정과 사회를 전공한다.

독일 실업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현업에서 실습을 하며 공부를 계속하는 ‘듀얼 시스템’.

주 5일 중 4일은 직장에서 일하고 나머지 하루는 재교육 기관에서 실무에 필요한 이론을 배운다.

레알슐레 졸업생 5명 중 4명은 3, 4년간 듀얼 시스템을 거친 뒤 이론과 실무 성적에 따라 최종 직업을 갖게 된다. 나머지 1명은 2년제 직업학교에 진학하고 아비투어를 거쳐 4년제 대학으로 진학하는 경우도 있다.

독일 남부 레겐스부르크시의 알버트 슈바이처 레알슐레 졸업반인 볼프강 투라인스키군(16)은 졸업 후 2년제 직업학교를 다닌뒤 4년제 대학에 진학해 자동차공학을 전공할 계획이다.

투라인스키는 “초등학교 때는 공부하는 게 싫었지만 레알슐레에서 내게 맞는 직업을 찾게 된 뒤 공부를 깊이 해 최고 전문가가 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 학교 프리드리히 하이어 교장은 “레알슐레에 입학하더라도 10학년 때 김나지움으로 옮겨가거나 아비투어를 본뒤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도 열어두고 있다”며 “늦되는 아이들이 진로를 조기에 결정하는 구조 때문에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배려”라고 설명했다.

레알슐레와 함께 실업계 학교로 분류되는 하우프트슐레는 성적이 아주 좋지 않거나 문제아들이 모이는 학교여서 평판이 좋지 않다. 최근에는 ‘아웃시들러’(러시아나 폴란드 등에 거주하던 독일 교포의 자녀들로 독일어도 서툴다)들이 하우프트슐레에 진학해 학교의 골칫덩이가 되고 있다.

하우프트슐레 학생들에게도 대학의 문은 열려 있지만 실제로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는 드물다.

▼독일고교 국제반 전과목 수업 영어로만 진행▼

영어 공부의 열기는 유럽의 강국인 독일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최근에는 전과목 수업을 영어로만 진행하는 김나지움이 생겨났다.

독일 바이에른주 레겐스부르크시의 폰뮬러 김나지움은 올 가을 독일 최초로 수업 전체를 영어로 진행하는 국제반을 편성해 화제가 되고 있다.

11∼13학년생을 대상으로 하는 국제반은 독일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의 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 물리나 수학도 영어로 배운다.

현재 11학년 102명 가운데 25명이 국제반에서 수업하고 있으며 이 중 15명만 추려 진급시킬 계획이다.

3년 과정을 무사히 마치면 ‘국제 졸업증’을 받게 되고 전세계 영어권 대학은 어디든지 토플 성적 없이도 진학할 수 있다.

현재 국제반에서 수업 중인 베로니카 발린양(16)은 “영어는 세계 공용어이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면 취업하는데 도움이 될”이라며 “대학 졸업 후 영어를 쓰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이 학교 하인리히 포저 교장은 “영어에 능통하지 않으면 국제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에서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며 “영어를 잘하는 교사를 찾기 힘들어 외국인들에게도 교사가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레겐스부르크〓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영국-중등학교 졸업후 2년간 칼리지 과정▼

올 여름 영국 중등학교를 졸업한 에마 잰킨슨양(16)은 런던의 리치몬드 어펀 템즈 칼리지에서 음대 진학 준비를 하고 있다.

잰킨슨이 이번 학기 수강하는 과목은 역사 음악 음악기술 영어 컴퓨터. 잰킨슨의 단짝인 비키 킹양(16)은 법학도를 꿈꾸며 수학 심리학 영어 법학 컴퓨터 과목을 배운다.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지만 잰킨슨과 킹은 이 학교 1학년생의 필수과목인 컴퓨터를 제외하고는 수강 과목이 전혀 다르다.

영국의 칼리지는 대학이 아니다. 중등학교 졸업후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2년간 각자의 적성에 맞는 진로를 모색하며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칼리지는 영어 수학 등 전통적인 교과목 외에 회계 건축 디자인 환경 여행 보육 배관 등 130가지가 넘는 다양한 과목을 개설해두고 있다. 학생들은 다양한 교과과정 중에서 적성과 관심 분야에 따라 자신의 진로에 맞는 3∼5개 과목을 선택해 ‘맞춤식’ 공부를 한다. 그래서 100명이면 100명 모두 시간표가 제각각이다.

칼리지 2학년인 로버트 불럭군(17)은 우주공학과 지망생으로 수학 심화수학 물리 컴퓨터 4개 과목을 수강한다. 법대 지망생인 다린 데이군(17)은 영어 법학 상업을 듣고 있다. 공부보다는 요리가 취미인 제시카 모야양(17)은 케이터링 과목을 수강하며 교내 식당에서 실습중이다.

학생들은 입학 전 개설 과목에 대한 정보가 담긴 안내 책자를 받는다. 책자에는 과목명과 교과 내용, 평가 방법, 관련 직종과 그 과목을 듣기 위해 필요한 자격 조건 등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경제학’의 수강 자격은 △수학과 영어의 중등학교 졸업시험(GCSE) 성적이 C 이상이고 △문제풀기와 숫자에 강하며 △시사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GCSE 성적과 인터뷰를 거쳐 칼리지에서의 학습 목표와 수강 과목을 결정한다.

졸업이 다가오면 교내 진로 센터에서 대입과 취업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진로 담당 교사의 상담도 받는다. 그러나 진로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은 담임 교사(tutor). 담임 교사 1명당 학생수는 18명이다. 학생 1명당 매주 2시간씩 상담을 하고 학교 생활과 진로 선택을 돕는다.

리치몬드 어펀 템즈 칼리지의 하우어드 체스터 교사는 “우리 학교는 중등학교와 대학 또는 사회를 이어주는 훌륭한 징검다리”라며 “학생 개개인이 자기에게 맞는 길을 찾아 착실히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고 말했다.

지역마다 제도가 다르다. 대개는 7세부터 11세까지 5년간 초등학교(Preparatory School)를, 11세부터 6년간 중등학교(Secondary School)를 다닌다.

중등학교 과정이 끝나면 졸업시험(GCSE)을 치른후 대학 입학을 위해 2년간 우리나라 대학 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GCSE A급 시험을 준비한후 18세에 대학에 진학한다. GCSE는 30여개의 과목중 5∼7개 과목을 선택해 치르며 시험 결과는 A∼G까지 7단계로 구분된다. 대입 준비는 2년 과정의 칼리지에서 한다.

중등과정을 마치면 10명 중 6명은 대학에, 나머지 4명은 직업교육 대학에 진학해 국가공인 자격증을 얻어 사회에 진출한다.

<런던〓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대학 입학전 1년간 휴식년 다양한 인생체험▼

칼리지 2학년생인 레베카 몰트양(17)은 대학에 합격하면 1년간 휴식년(gap year)을 가질 계획이다.

“계속 공부만 하다보니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해외 배낭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도 하고 싶어요.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며 학비도 마련할 계획이예요.”

영국에서는 몰트처럼 대학에 진학하기 전 휴식년을 갖는 학생들이 많다. 휴식년은 학교 공부를 하느라 앞만 보고 달려온 학생들에게는 시야를 넓혀 장기적인 인생 설계를 할 수 있는 기회다. 학교 밖의 경험을 통해 직업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시키고 그에 맞는 일을 하면서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다.

학생들은 대입 원서에 입학을 연기해달라는 표시를 따로 한다. 때로는 휴식년 동안에 할 일에 대한 멋진 계획을 입학원서와 함께 제출, 입시 담당자들로부터 보너스 점수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단점들도 있다. 쉬는 동안 배웠던 내용을 잊어버려 새로 공부를 시작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뚜렷하게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기 쉬우며 결정을 불필요하게 미룰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담임 교사들은 휴식년을 결심하기 전 반드시 뚜렷한 목적의식과 계획을 세울 것을 주문한다.

<런던〓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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