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위기의 확산과 더불어 다양한 담론이 나오고 있지만 오귀스탱 베르크의 이야기에는 특별히 귀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는 일본에 오랫동안 거주해 온 프랑스인으로 일본의 프랑스문화원 원장까지 역임하며 동서양 문화를 한 몸에 익힌 환경철학자이기 때문이다.
지리학에서 출발해 사유의 폭을 넓힌 사람답게 그는 새로운 환경철학의 정립을 위해 지리와 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사상에도 정통해 공간에 대한 현상적인 이해가 돋보인다.
저자의 인생경력과 주장은 미국에서 환경철학의 대부로 불리는 알도 레오폴드와 비교할 수 있다. 임학자였던 레오폴드는 숲을 관리했던 오랜 체험을 통해, 인간은 숲 없이 살 수 없다는 통찰에 도달한다. 그는 기존 윤리학이 인간에만 관심을 두었다고 비판하면서, 윤리학에 자연개념을 추가, 새로운 철학 ‘대지의 윤리’를 제창했다.
베르크는 더 나아가 지리와 문화의 개념을 추가한다. 이 책의 부제인 ‘에쿠멘의 윤리적 원리’ 중 ‘에쿠멘’이란 ‘지구상에서 인간이 살고 있는 부분’이란 의미다. 지구는 레오폴드가 가정하듯이 생태계, 생물계의 의미뿐 아니라, 우리 인간의 거주 장소, 존재 장소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인간을 마치 지구라는 환경 없이도 살 수 있는 독립된 절대적 존재로 가정하는 인간중심주의도 문제지만, 지구를 단순히 생태계로, 그리고 인간을 생태계의 평범한 구성원으로 보는 생태주의도 문제라는 것이다. 지구는 단순한 생태계가 아니라 우리 인간의 거주지이며, 이를 인식할 때에야 자기의 거주 공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에게는 근본생태주의를 주장하는 아른 네스, 자연의 권리를 주장하는 로데릭 내쉬, 그리고 생태계주의를 주장하는 비어드 캘리코트 등 주요 환경철학자들이 모두 비판 대상이다. 인간의 주체성에 대한 설명과 문화적인 것에 대한 설명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들의 주장대로, 우리 인간이 다른 생명들과 마찬가지로 생태계의 단순한 구성원이라면, 환경보전의 막중한 책무를 우리 인간에게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문화적, 공간적 생태철학을 주장한다. 미국 사람들이 야생의 공간을 아름답고 선한 것으로 본 것은 19세기부터이고 이것은 당시 유행했던 낭만주의 때문이다. 여기서 공간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문화, 더 나아가 인간의 실존과 관련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플라톤, 데카르트 등의 고전으로부터 한스 요나스, 엠마뉴엘 레비나스 등의 현대철학, 그리고 프란시스코 바렐라, 브루노 라투어, 스티븐 제이 굴드 등 사상계의 거물들이 다양한 문학작품, 지리학자의 저술과 함께 인용되고 있어 저자의 다양한 사유에 놀라게 된다. 중국, 한국, 일본의 정원을 비교 설명하고 풍수지리를 언급하는 것도 흥미롭다. 최근 일본학계의 중요한 성과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유려한 번역이 인상적이지만 저자의 지적인 폭을 느낄 수 있는 주요 개념과 인명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김명식(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환경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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