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화제/유도]유주현, 병마에 빼앗긴 매트의 꿈

  • 입력 2001년 12월 24일 17시 36분


‘청천벽력(靑天霹靂)’을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국가대표 유도 선수로 한때 세계를 호령할 꿈에 부풀어 있던 유주현(25·한국마사회)에게 “당신은 ‘고관절 대퇴부 무혈성 괴사’란 희귀성 질병을 앓고 있다”는 의사의 진단은 바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유주현은 1999년과 2000년 코리아오픈 국제유도대회 남자 60㎏급을 2연패한 데 이어 올 6월 열린 범태평양대회까지 제패한 한국 남자 유도의 최고 기대주. 하지만 범태평양대회 결승에서 우승을 확인한 뒤 붕대를 푸는 순간 다리에 격렬한 통증을 느끼며 그만 매트에 쓰러지고 말았다.

유주현은 병원 진단 결과 자신이 엉치뼈부터 오른쪽 허벅지까지 뼈가 썩어가는 희귀 질병에 걸렸음을 알았다. 유주현은 그 길로 병원에 입원해 썩어가는 뼈를 잘라내고 인공 뼈로 대체하는 대수술을 받았고 꼬박 한 달을 병원서 보낸 후 퇴원, 최근까지 목발에 의지한 채 ‘걷는 연습’을 계속했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오른쪽 다리 수술만으로도 선수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왼쪽 허벅지도 같은 증세로 썩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직은 오른쪽 수술 부위가 완전히 아물지 않아 미루고 있지만 조만간 왼쪽 다리도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 사실상 선수생명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

유주현이 유도를 시작한 것은 대구초등학교 4년 때. 그 뒤 계성중-서울체고를 거치며 현 국가대표이자 팀 선후배인 김형주(26) 정부경(24)과 전국대회 우승컵을 나눠가졌고 한양대에 진학해서도 1년 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3위를 차지할 만큼 앞날이 밝았다. 하지만 대학 2년 때 국가대표 2차 선발전을 불과 하루 앞두고 아버지가 간암으로 유명을 달리한 뒤 유주현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한동안 도복을 입을 수 없었다.

꼬박 1년6개월을 방황하고 난 뒤 “아버지를 위한 길은 다시 유도를 시작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에 다시 매트에 섰다. 그리고 대학 4년 때인 99년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열린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서 2위에 오르며 오뚝이처럼 재기했고 그 뒤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노력도 모두 물거품이 됐다. 뼈가 썩어가는 이 병은 수술 뒤에도 석달에 한번씩 검사를 받아야 하고 10년마다 인공 뼈를 갈아줘야 한다. 결국 선수생활은 물론 후배들을 지도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얘기.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유주현은 최근 소속팀에도 사표를 제출해 생계마저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그러나 유주현은 “수술 뒤 병실에 누워있을 때 더욱 선수생활에 대한 애착이 강해졌다”며 “이까짓 병 때문에 인생의 패배자가 되기는 싫다”는 말로 재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김상호기자>hyangs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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