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사태는 동북아 국제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불편하기만 하던 미중관계는 이를 계기로 상당히 회복되었다. 일본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제2차 세계 대전 종료 이후 처음으로 자위대를 해외에 파병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대테러 전쟁의 다음 단계에 북한이 포함될 가능성으로 인해 한반도 한편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그러나 시각을 보다 길게 잡고 보면 미중관계는 대만문제를 비롯한 여러 현안들을 둘러싸고 갈등과 협력이 교차하는 어려운 관계가 계속될 것이다. 거대한 중국의 등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여전히 동북아 최대의 숙제로 남아 있다. 일본의 역사인식과 국제적 역할 강화는 앞으로도 주변국의 대일 불신의 원천이 될 것이다. 미국은 테러근절 차원에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 해결에 더욱 압박을 가하겠지만, 한반도는 이라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위험한 지역이라는 것을 새삼 절감할 것이다. 한마디로 9·11 사태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에는 변화보다 지속성이 강하게 작용할 것이다.
동북아는 과거 현재 미래의 문제가 얽히고 설킨 대단히 복잡한 지역이다. 전통적 경쟁의식과 뿌리깊은 불신, 한반도와 대만문제, 그리고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역할증대 등으로 불확실성과 불안정이 짙게 깔려 있다. 이런 문제는 9·11 사태 이후의 협력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쉽게 해소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이번 한 일 미 중 공동조사에서 나타난 여론의 동향도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신뢰구축 노력이 절실하다. 이와 함께 지역국가간 교류와 협력을 증진하고, 이를 제도화해 나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동북아 국가간 다자협력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국제관계는 힘의 분배와 같은 구조적 요인뿐만 아니라 여론과 같은 인식적 요인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민주국가에서 여론은 정책선택의 폭과 대외정책을 제한한다. 국민의식과 여론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매스컴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을 정확히 알리되 불신을 조장하거나 불안을 증폭시켜는 안 된다. 한 중 일 삼국간 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여론을 감안할 때 국가지도자의 비전과 리더십의 중요성 또한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백진현(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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