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우리나라 쌀값이 생산비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정부가 보장해온 쌀값은 농촌의 구매력이 되어 농촌사회를 유지하고, 도시로 진출하는 후손들의 밑거름이 되는 생계비라고 믿는다. 우리 농촌은 쌀 농사 이외에 다른 소득원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농민이 도시로 나가면 도시의 부담이 커지고, 국토의 보전이나 국력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정부는 그 동안 농민들이 농촌에 남아 전통문화를 지키고, 국토를 가꾸는 대가로 생계비를 지원한 것이다. 일본 농민은 수입의 20% 남짓만 농업에서 얻지만, 우리는 80%를 농업에서 얻기 때문에 쌀값이 떨어지면 그 피해의 규모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러면 그간의 농업정책이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임에 비해 발언권이 약하고 정책적 기능도 축소됐지만 농정당국은 나름대로 제 역할을 해왔다고 본다. 혹자는 농림부를 항상 농민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농림조합 정도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예산당국이 주는 적은 돈을 자린고비처럼 쪼개 논밭에 투자해 주곡의 자립을 달성했고, 농민의 거듭되는 불만을 능숙한 기업이 노조 대하듯 쌀값 줄다리기로 성공적으로 달래 왔지 않은가.
이렇게 해서 남는 재원이 소위 우선 순위에 올라 있는 다른 산업에 투자되어 이 나라의 국부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고도 주곡인 쌀을 남게 하고, 쌀값을 앞으로도 더 싸게 할 것이다. 결국은 수백조원의 공적자금으로 연명하고 있는 다른 기관들에 비추어 본다면 농정당국이 가장 효율적인 정책집행기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기본은 안전하게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잘 먹이며, 국민을 잘 가르치는 일이다. 그런데 정부는 그간 행정편의주의를 앞세워 잘 먹이는 일은 쌀값 하나로 조절하고, 잘 가르치는 일은 대학입시만으로 헤쳐 나가도록 단순화해왔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
지금처럼 농민을 살리기 위해 쌀밥을 많이 먹어줘야 한다든지, 맛있고 비싼 쌀을 생산하게 해 농가소득을 부분적으로 올리는 것과 같은 단편적인 방식으로는 또 다른 어려움만을 초래할 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까지 쌀값이 담당해왔던 농촌사회의 유지 기능에 초점을 두고, 이것을 대신할 수 있는 종합적이고 가시적이며 현실적인 조치가 마련되어 농촌이 그야말로 삶의 현장이 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정재(서울대 교수·생물자원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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