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호미곶

  • 입력 2002년 1월 2일 18시 13분


한반도가 토끼 모습을 닮았다는 말은 일제가 퍼뜨렸다. 1905년 조선통감부가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라는 지리학자의 ‘산맥체계론’을 교과서에 실으면서 조선인을 나약한 민족으로 깎아내리려고 한반도 모양을 연약한 토끼에 비유했던 것이다. 육당 최남선(六堂 崔南善)은 이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여암 신경준(旅庵 申景濬)의 ‘백두대간’을 원용해 산맥체계론을 비판하고 연해주를 향해 발톱을 세운 채 포효하는 위풍당당한 호랑이로 한반도를 그렸다. 이른바 ‘맹호 형국론’이다.

▷우리 국토를 호랑이에 비유한 이는 육당에 앞서 조선 명종조 풍수학자인 남사고(南師古)가 처음이다. 그의 ‘산수비경’에 보면 한반도를 앞발을 치켜든 호랑이 형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 중에 백두산은 코에 해당하며 운제산맥 동쪽 끝인 호미곶은 꼬리 부분으로 천하의 명당이라고 했다. 꼬리 부분을 국운이 상승하는 명당으로 친 것은 호랑이는 꼬리를 축으로 삼아 달리며 꼬리로 무리를 지휘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제가 이곳에 쇠말뚝을 박아 우리 정기를 끊으려 했던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 세오녀 설화도 바로 여기를 무대로 하고 있다. 호미곶에 살던 연오랑 부부가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가버리자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이에 신라에선 일본으로 사신을 보냈고 세오녀가 손수 짠 비단을 받아와 제사를 지내자 빛을 되찾았다는 줄거리다. 그러고 보면 이곳은 예로부터 해와 달이 가장 먼저 뜨는 곳으로 여겨져 온 것 같다. 조선말 김정호(金正浩)도 영일만 지역을 일곱 차례나 답사한 끝에 대동여지도에 호미곶을 한반도 동쪽 끝으로 표기했다지 않은가.

▷우리나라 지도를 펼쳤을 때 영일만 옆으로 불쑥 튀어나온 끝 부분이 호미곶이다. 새해 첫날이면 이곳은 전국에서 일출을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댄다. 육당이 백두산 천지, 변산 낙조 등과 함께 조선십경으로 꼽았을 정도로 호미곶 일출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국립지리원이 엊그제 장기곶으로 표기되어 오던 이곳의 정식 지명을 호미곶으로 되돌렸다는 소식이다. 일제가 1918년 이름을 바꾼 지 83년 만이다. 그동안에도 장기곶보다 호미곶으로 더 알려지긴 했지만 정식으로 지명을 바꾼 의미는 각별하다. 새해엔 우리 모두 힘차게 포효하는 호랑이가 되자는 기원도 담겨 있을 게다.

최화경 논설위원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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