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막스 카스/폭력으론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 입력 2002년 1월 2일 18시 23분


물리적 가혹행위를 의미하는 폭력은 인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있어 왔으며 때론 개인들간의 위상과 힘의 차이, 즉 불평등을 균일하게 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폭력이 인간들의 공평하고 정의로운 공존을 도모하는 방법이 될 수 있느냐는 별도의 문제일 것이다.

다원적 법치민주국가(pluralist legal d-emocratic nation)에서는 약자에 대한 물리적 가혹행위를 사전에 방지하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규제가 마련됐고, 자유로운 문제 제기를 통해 다양한 정치적 이슈들에 대한 결의 또한 매번 뒤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동유럽 공산주의 붕괴 이후 한동안 민주 법치국가만이 인류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정치 기구이자 유일하게 살아남은 민족국가 체제라는 믿음이 강하게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20세기 후반 민주적 시스템이 어디서나 원활하게 뿌리를 내리고 국가와 인류의 발전도 이를 통해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이 현실과 거리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구 유고슬라비아나 코소보, 말레이시아의 내분은 국가가 제시한 ‘평화적 해결책’이 결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이 같은 내분은 국가의 사회적 정치적 지도세력들이 제각기 다른 민족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수렴하고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 정치적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평화적 협상이 임박한 것처럼 보였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현재 폭력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보일 만큼 악화되었다.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다’는 스팅(영국 록 가수)의 말을 다시금 곰곰이 되씹어보게 한다. 폭력은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데도 폭력의 악순환은 반복되고 있다.

9·11 미 테러사태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폭력은 이 같은 악순환을 지속시키고 있다. 새로운 유형의 폭력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국가와 국가, 또는 국가 내의 갈등으로 인해 야기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대표자로 간주하고 방만한 이권을 놓고 싸우는 사람들간의 갈등이다.

따라서 그 해결방법 또한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예전과 다를 바 없는, ‘갈등은 폭력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논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한 테러전쟁은 바로 그 예다.

지금은 평화와 형제애, 그리고 이해와 관용이 강조되는 신년 초다. 그 어느 때보다 ‘폭력으로는 그 어떤 것 해결할 수 없다’는, 즉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라는 사실을 음미해봐야 할 때인 것이다.

사회지도 세력들은 폭력은 또 다른 폭력, ‘증오’라는 질긴 감정의 끈만 대물림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당한 폭력’이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폭력을 통해 정치 사회적 갈등에 대한 총체적 해결에 도달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막스 카스(독일 브레맨대 인문사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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