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인터뷰]'공공의 적'주연 설경구, 프로는 한다면 한다

  • 입력 2002년 1월 3일 15시 55분


“경구야, 한 10㎏ 찔 수 있니. ”

“예.”

6개월 뒤.

“경구야, 너 웃통 벗으면 갈비뼈가 드러나야 한다.”

“예.”

25일 개봉하는 영화 ‘공공(公共)의 적’에서 주인공 철중으로 출연한 설경구(35). 앞서 나온 살 에 관한 짧은 대화는 그가 강우석 이창동 등 두 감독과 주고 받은 것이다.

▼살은 나의 적▼

지난해 설경구에게 개인의 적은 체중이었다. 앞서 “살을 찌우라”는 말은 지난해 4월 ‘공공의 적’의 강우석 감독의 주문이었다. 뒤의 “빼라”는 ‘박하사탕’ 의 이창동 감독이 설경구를 신작 ‘오아시스’ 에 캐스팅하면서 주문한 것이다. 이 바람에 설경구의 체중계 바늘은 70㎏→88㎏→68㎏으로 오르내렸다. 18㎏를 늘린 뒤 다시 20㎏를 줄인 것.

최근 기자와 만난 설경구는 화제가 체중 문제로 쏠리는 게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그는 “음식을 많이 먹고 잘 움직이지 않는 방법으로 살을 찌웠다” 고 말했다. 살을 뺀 비결에 대해서는 “두달간 하루 5시간씩 액션 스쿨(배우들에게 액션 연기를 지도해주는 곳)에서 구르고 뒹굴었더니 살이 쪽 빠졌다” 고 말했다.

‘공공의 적’ 은 법보다 주먹을 가깝게 여기고 심지어 마약까지 파는 형사 강철중(설경구)과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나 기분에 따라 살인을 저지르는 펀드매니저 조규환(이성재)의 대결을 그렸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는 지능적인 살인범을 추적하는 두뇌 게임식으로 펼쳐지지 않고, 강우석 감독의 히트작인 ‘투캅스’ 류의 액션과 웃음으로 이어진다.

“강형사는 좋은 놈은 아닙니다. 자기 얼굴에 칼자국을 낸 놈에게 복수하려다 진짜 나쁜 놈을 만난거죠. 세상이 타락했다지만 최소한의 양심은 지켜야 한다는 게 강형사의 생각입니다.”

▼연기 잘한다는 말이 무섭다▼

한양대 연극영화과 86학번인 그는 96년 장선우 감독의 ‘꽃잎’의 단역을 시작으로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잘 생기지도, 잘 튀지도 못한 평범한 배우였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모스키토’에 출연한 경력으로 충무로보다 대학로에서 더 알려졌을 정도.

99년 개봉된 ‘박하사탕’은 그의 영화 인생을 바꿔놓은 계기가 됐다. 20년을 거스르면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영호란 인물에 투영시킨 그의 연기는 소름끼치는 광기 , 그 자체였다. 이후 그는 ‘단적비연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에 잇따라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가 됐다.

“연기 잘한다는 소리요? 그거 배우 죽이는 이야기예요. 아직 멀었습니다.”

‘박하사탕’ 에 얽힌 에피소드. 제대로 개봉되는 첫 주연 작품이라 이러저리 뛰며 열심히 홍보했다. 설경구 문소리 김여진 주연의 ‘박하사탕’ 입니다.

일부 팬들은 배우 이름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에로영화냐 고 되물었다. 기가 막혔다. 그래도 ‘박하사탕’ 을 찾는 관객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난, 그 배우 연기 잘한다가 아니라 그 작품 좋다는 말이 배우에게 주는 최고의 칭찬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배우일수록 자연스럽게 작품과 하나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른 즈음에▼

그는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게 되면 으레 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를 불러제낀다. 94년 한 콘서트에서 이 곡을 만났을 때 ‘이건, 내 인생이야’ 였다. 당시 자기 능력에 대해 물음표가 많았던 20대 후반의 설경구는 이 노래에 마음을 빼앗겼다. 뮤지컬 배우지만 갈 길은 멀고, 영화에도 기웃거렸지만 아예 캐스팅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야, 설경구다” 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된 요즘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확고하다. 개런티에 연연하지 않고 이전 작품과 다른 캐릭터를 찾는 것. 그래서 영호에서 오로지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단적비연수’ 의 ‘적’ 으로, ‘나도 아내…’ 의 평범한 샐러리맨 ‘봉수’로, 다시 무대포 형사 ‘철중’으로 바뀌었다.

스크린 밖에서 만난 그는 광기는 커녕 수줍음을 많이 타는 배우 같지 않은 배우 였다. 심지어 영화 촬영장이 아닌 곳에서 카메라 앞에 서면 얼굴에 경련이 난다고 한다.

“‘서른 즈음에’ 를 처음 들었던 그 느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새해 포부가 있다면 ‘오십 즈음’ 까지 배우로 열심히 사는 겁니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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