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놀로지에 빗대어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 ‘평양놀로지’다. 구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도대체 그 속내를 알기 어려운 북한 지도부를 보다 정밀하게 관찰하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노동신문’ 등 공식매체의 논조 분석은 대부분의 북한 연구자들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평양놀로지의 한 가지 방법이다. 정보기관에는 물론 매일매일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어조 및 안색(顔色)을 점검하는 전문가들도 포진해 있을 것이다.
▷북측이 매년 초 당보(黨報) 군보(軍報) 등의 공동사설 형식으로 발표하는 신년사는 이런 평양놀로지의 기본적인 분석 대상이다. 이를 통해 한 해 동안 북 측이 취하게 될 대내외 정책의 기본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02년 첫날에는 ‘위대한 수령님 탄생 90돌을 맞는 올해를 강성대국 건설의 새로운 비약의 해로 빛내이자’라는 긴 제목으로 나왔는데,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보다는 내부 결속에 주력하겠다는 의지가 더 강해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한마디로 신년사를 통해 본 올해 남북관계 기상도는 ‘대체로 흐림’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크렘린놀로지는 구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가 민주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효용가치를 잃었다. 이제 러시아는 암호해독처럼 어려운 방법을 통하지 않아도 분석과 설명이 가능한 대상이 됐다. 반면 평양놀로지는 여전히 중요하다. 김정일 위원장이 얼마나 진지하게 개혁·개방을 고려하고 있는지, 그의 건강은 북한 체제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등 모든 것이 평양놀로지의 분석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북한이 민주화된 개방사회가 될 때까지는.
송문홍논설위원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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