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白凡 金九) 선생의 1949년 신년사 ‘단결원칙을 세우자’는 이렇게 자기반성에서 시작된다. 백범은 자주독립의 민족적 염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새해를 ‘단결년’으로 맞이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단결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나라 망치는 두가지▼
“원칙 없는 단결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가령 백성의 생활을 위협하고 백성을 무리하게 압박하는 탐관오리가 그 백성을 보고서 단결만 하면 잘 살 수 있다고 하면 그것은 그 백성이 믿어서 따를 수 없을 것이다.”
백범은 그 해 6월 26일 당시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安斗熙)가 쏜 총탄에 맞고 서거했으니 이것이 마지막 신년사인데, 반세기 이상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선생의 말씀은 살아 있다. 선생의 말씀을 오늘의 글로 옮기면 원칙 없는 부패한 권력이 아무리 국민통합을 얘기해도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인도의 ‘위대한 영혼’인 마하트마 간디는 1925년 그의 나이 쉰 여섯에 펴낸 저서 ‘젊은 인도’에서 나라를 망치는 사회악으로 ‘원칙 없는 정치’와 ‘양심 없는 기쁨’을 꼽았다. 1인 보스가 좌지우지하는 패거리 정치, 뿌리와 정체성이 다른 정당간의 정략적 야합, 의원을 꿔주었다가 돌려받는 술수의 정치, 오로지 표를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저질 정치가 몽땅 원칙 없는 정치의 표본이라는 것이야 두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양심 없는 기쁨은 무엇인가. 청와대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 등 국가중추기관의 인물들이 온갖 게이트에 한 다리씩 걸치면서 뇌물을 받고 즐거워했다면 그게 바로 양심 없는 기쁨이다. 나라의 요직을 끼리끼리 나누어 차지하고 기뻐했다면 그 또한 양심 없는 기쁨이다. 권력실세로 온갖 이권과 인사에 개입하며 으스댔다면 그 역시 양심 없는 기쁨이다. 이런 양심 없는 기쁨의 커넥션이 판을 쳐대면 ‘정의의 반대는 불의가 아니라 의리’인 세상이 된다.
이미 그런 세상이 됐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고 어지러워도 한 걸음씩 진보한다는 낙관마저 잃을 수는 없다. 한 시대가 지나고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는 믿음은 소중하다. 김대중(金大中·DJ) 대통령이 이제 할 일은 그런 믿음에 힘을 보태고 그의 시대를 마감하는 것이다. 진정 역사와 마주한다는 자세로 사심(私心)을 버리고 공정한 국정관리자로서 남은 1년을 보내야 한다.
김 대통령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다시 새 정당을 만드는 일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며 양대 선거가 공명선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공정한 인사로 인사난맥상으로 인한 잡음도 없애겠다고 했다. 필자는 김 대통령의 약속을 믿고 싶다. 그러나 세상의 의심에 가득 찬 눈들마저 그런 것은 아니다. 새해 벽두부터 인사잡음이 일었으니 의심하는 쪽만 탓할 일은 아니다. 의심을 지우려면 말만으로는 안 된다.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그 첫 작품이 내각 개편이다. ‘코리아 드림팀’을 짜기에는 너무 늦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이 보기에 저만하면 ‘차선’은 되겠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 모든 책임은 대통령이 질 테니 당신들이 소신껏 해보라고 권한을 주어야 한다. 그도 저도 아니고 어정쩡하니 겉모습만 ‘중립내각’이어서는 1년 내내 나라 안이 온통 선거바람의 아수라장인 가운데 국정은 끝도 없이 표류할지 모른다.
▼희망보다 걱정이 앞서는데▼
사실 많은 국민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새해가 왔어도 희망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은 그 때문이다. 국민의 걱정을 덜어주려면 우선 권력형 부패와 비리부터 도려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파장에 ‘먹고 튀자’가 극성을 부릴 소지가 농후하다. 이를 막으려면 이미 국민 신뢰를 잃은 사정기관부터 손봐야 한다. ‘믿을 수 있는 내 사람들’에 연연한 채 적당히 넘겨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성공한 대통령’은 아닐지언정 더 이상 ‘실패한 대통령’은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야말로 새해의 국민적 소망이 아니겠는가. 김 대통령은 그 소망에 답해야 한다.
전진우 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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