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과 사람2]숲은 ‘인간의 간섭’을 싫어한다

  • 입력 2002년 1월 4일 18시 33분


슈바르츠발트의 일부인 가문비나무숲
슈바르츠발트의 일부인 가문비나무숲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슈바르츠발트. 지리산의 20배에 달하는 넓은 숲지대로 숲속에 들어가면 햇빛을 볼 수 없다 해서 흑림(黑林)으로 불린다.그런데 그 흑림은 대부분 천연림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인공림이다.

자연과 숲을 강조하는 홍보물에도 자주 등장하는 그 울창한 밀림은 겉으로 보기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숲의 혁명을 상징하는 작품처럼 보인다.그러나 실제로는 절반의 실패작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그런 점에서 흑림은 인간과 숲의 관계 정립을 위한 교과서이자 산증인지도 모른다.

▼글 싣는 순서▼

- <1>"숲과 인간은 하나"
- <2>숲은 ‘인간의 간섭’을 싫어한다
- <3>집-사람 어우러진 한폭의 풍경화

요하네스 그로스씨(62)는 중부 슈바르츠발트 볼파흐 마을에서 조상 대대로 숲을 가꿔왔다. 그는 요즘 자신의 대를 이을 막내 아들 후베르투스(21)와 함께 하루 10그루 정도의 나무를 골라 벤다.

골라 베기는 모두 베기처럼 단순하지 않다. 평생 벌목을 해온 그도 어느 나무를 베야 할지는 산림관의 도움을 받아 결정한다. 수십m 길이의 나무를 베다보니 주변 나무들이 다칠 염려가 크다. 나무가 쓰러질 방향을 몇차례 따져보고 조심스레 톱질을 한다. 이윽고 쿵!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무가 땅으로 추락한다. 마지막으로 트렉터와 밧줄을 이용해 나무를 길가로 끌어내린다. 하나 둘 길가에 쌓이는 나무들은 몇일뒤 야적장으로 실려가 경매에 부쳐질 것이다.

그로스씨가 사는 볼파흐는 라인강(江)의 지류인 킨치히천(川)이 발원하는 곳. 네덜란드가 해양 패권을 놓고 영국과 각축을 벌이던 18세기, 볼파흐의 목재는 뗏목으로 엮여 라인강 하류의 네덜란드로 떠내려가 대양을 항해하는 선박의 갑판과 돛대로 쓰였다. 길이 300m 폭 50m가 넘는 뗏목들이 라인강을 따라 흘러가는 모습은 그 시대의 대표적 풍물이었다.

뗏목 교역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숲속에 떨어진 나뭇조각을 땔감으로 줍는 것 말고는 숲을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나무가 돈이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원시상태의 천연림을 모두 베기식으로 마구 베어내고 그곳에 빨리 자라는 가문비나무를 심었다. 수익성이 적은 너도밤나무는 서서이 도태되고 전나무도 설 땅을 잃어갔다. 그로스씨의 조상들은 그렇게 천연림을 베어내고 그 자리에 역사상 가장 생산적인 숲을 만들어냈다.

겉으로는 한층 무성해지고 푸르러진 숲속에서 그들이 이상한 변화를 감지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활엽수인 너도밤나무 대신 침엽수인 가문비나무가 주종을 이루면서 이곳의 식생이 자연상태의 활엽수 70%, 침엽수 30%에서 침엽수 70%, 활엽수 30%로 바뀌었다.문제는 침엽수의 낙엽이 토양을 산성화시키는 주범이라는 사실이었다.

가문비나무는 뿌리가 깊이 내리지 못하고 옆으로 뻗는 탓으로 바람에도 매우 취약했다.1990년 폭풍으로 독일 전역에 걸쳐 1억㎥에 달하는 나무들이 넘어졌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스위스와 독일 남부를 강타한 1999년 폭풍으로 독일 남부에서만 2700만㎥의 나무들이 뿌리채 뽑혔다. 우리나라의 한해 평균 목재 생산량 100만㎥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큰 피해인지 가름해볼 수 있다. 수많은 세월을 거쳐 자연환경과 최적의 조화를 이룬 천연림을 인위적으로 바꾸면서 생긴 변화의 후유증이다.

그로스씨도 숲에서 많은 가문비나무를 키우고 있다. 그는 “나무는 인간보다 훨씬 긴 시간을 산다”며 “아버지 세대가 가문비를 심었으면 그것이 나쁘다 하더라도 아들 세대는 가문비를 가꿀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로스씨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가문비나무가 자라는 대로 골라 베어내고 그 자리에 너도밤나무를 심는 것이다. 정부에서도 수익성이 낮은 너도밤나무를 심을 때는 보조금을 지급하며 천연림의 회복을 돕고 있다.

숲은 본래 천연림처럼 서로 다른 나무들이, 그것도 어른 아이 나무 할 것없이 더불어 살아야 건강한 법이다. 너도밤나무는 천천히 자라는 대신 토양의 산성화를 막아준다. 어린 전나무는 그늘을 좋아해 훌쩍 큰 가문비나무의 그늘에서 더욱 튼튼해진다. 전나무가 든든한 뿌리로 받쳐주면 가문비나무도 폭풍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나무들은 그렇게 ‘더불어 숲’이 되는 것. 독일인들이 뒤늦게 깨달은 진실이다.

프라이부르크(독일)〓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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