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는가?
새로운 세기의 첫 해에 발생한 테러사건과 뒤이은 전쟁은 평화의 시대를 기원하였던 우리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과거의 실수를 교훈으로 삼지 않는 한 미래 역시 밝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우리는 지난 세기 두 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시작된 폭력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나치즘과 파시즘이 타파되었다고 해서 이러한 전체주의적 경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우리가 나치즘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개발한 핵무기는 나치즘이 붕괴한 이후에도 여전히 인류의 실존을 위협하고 있으며, 자본주의의 세계화에서 비롯된 남북의 갈등과 계층의 양극화는 새로운 폭력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 역사는 우리가 이성적으로 성장하기는 커녕 우리의 실수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칼 포퍼(Karl Popper)는 “우리는 우리의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역사는 반복되는 실수와 시행착오를 통해 진보한다고 말한다. “폭력을 감소시킬 수 있고 이성의 통제하에 둘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일 뿐만 아니라 동서양 문명의 장구한 역사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단지 비판적 합리주의자로만 알려진 포퍼의 이 말은 간단하지만 그 의미는 사뭇 심각하다. 왜냐하면 이 명제는 이 책의 부제가 암시하는 것처럼 “과학적 지식의 성장”에만 타당한 것이 아니라 ‘인식’, ‘역사’ 그리고 ‘정치’의 문제에 두루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포퍼는 우리가 실수로부터 배우려면 우선 실수 자체가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독단적 이성 대신에 비판적 이성을 주장하는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는 끊임없는 시도와 실패, 그리고 자신의 오류에 대한 지속적 비판을 통해 의식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태도의 원리이다. 인간 이성의 오류 가능성이 비판적 합리주의의 제1 명제가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 책의 미덕은 이러한 인식론적 입장에 대한 체계적 설명보다는 비판적 합리주의가 민주주의와 근본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인식에 있다. 추측과 논박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것과 패배와 시행착오가 거듭되더라도 인간 생활로부터 폭력을 배제하는 것은 합리주의자의 중요한 과제로서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합리주의자는 근본적으로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논증에 의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위협이나 협박을 통한 성공보다는 차라리 실패하더라도 논증에 의해서 다른 사람을 납득시키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오류가능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이처럼 타자의 입장에 대한 열린 태도를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포퍼는 절대적 진리와 유토피아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유토피아주의는 우리가 과학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어떤 목적을 절대적 이상으로 설정함으로써 바람직한 사회에 대한 의견들의 차이와 다양성을 제거하기 때문에 폭력을 낳기 쉽다는 것이다. 유토피아주의는 자신과 동일한 목적을 공유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논증보다는 폭력을 통해 파괴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언적으로 결정되어 버린 유토피아적 미래가 현실의 문제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된다면, 유토피아주의가 미래를 지향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래에 대해 폐쇄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포퍼는 “먼 미래의 이상에 대한 꿈에서 깨어나 새로운 세계와 인간을 만들기 위한 유토피아적인 청사진을 위해 더 이상 투쟁하지 않을 때 비로소 이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역설적으로 주장함으로써 미래에 대해 열린 정치를 추구한다.
포퍼의 합리적 비판주의는 한 마디로 “경험과 성숙이 증가할수록 독단적 태도보다는 오히려 신중하고 비판적인 태도가 자주 나타난다”는 명제로 압축된다. 우리 사회는 이제 독단이 판치던 사회에서 다양한 이념과 가치가 공존하는 관용의 사회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다. 우리가 압축성장에서 파생된 폭력을 이성으로 대체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를 진정으로 꿈꾼다면, 포퍼가 탄생 100주년에 들려주는 이 말은 정말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합리주의를 택하는 것은 폭력을 증오하기 때문이다.”
이 진 우 계명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