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모교 정치권은 돈 안준다"

  • 입력 2002년 1월 6일 15시 04분


자수성가한 기업인이 제일 먼저 기부를 하고 싶은 곳은 어딜까. 십중팔구는 태어나서 자란 고향이나 모교일 것이다.

그러나 작년초 "기업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야 한다"며 미련없이 경영권을 버려 화제를 모았던 정문술(鄭文述·64) 전 미래산업 사장은 정반대다. 그가 절대로 기부를 하지 않는 '기부금지 리스트'에 오른 것이 고향과 모교, 그리고 정치권이다.

정 전사장은 "은퇴 후에 요청은 많았지만 고향 모교 정치권에는 10원짜리 하나 안줬다"며 "이로 인해 욕도 많이 먹었다"고 6일 털어놨다.

그가 구두쇠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정전사장은 "바이오시스템 산업 육성을 위해 써달라"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300억원의 사재(私財)를 내놓는 등 요즘 기부활동에 여념이 없다. 한국의 카네기 같은 인물이 되는 것이 남은 인생의 목표.

"한국의 문화중 가장 먼저 없애야할 것이 연고주의(緣故主義)입니다. 고향을 따지고 출신학교를 따져서는 이 나라가 발전할 수 없습니다. 연고주의를 깨는데 작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고향과 모교에는 돈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정치권이 그의 기부금지 리스트에 오른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미래산업 사장 재임시절 봉투에 정치인 이름이 적인 우편물은 비서가 뜯어보지도 않은채 쓰레기통에 버렸을 정도.

"사업가는 정치권과 거리가 멀수록 좋습니다. 요사이 시끄러운 각종 게이트도 그에 대한 반증이 아니겠습니까."

은퇴후 각종 명예직 제의도 많았지만 그는 모두 거절했다. 명예박사만 5건이었고 각종 이사장이나 총재도 적지 않았다.

"안해본 사람은 절대로 못느끼겠지만 무거운 등짐을 벗어던지는 기분 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벤처 후배들에게 곱게 늙는 노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따름입니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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