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굴지의 제약회사 머크사의 한국지사인 한국MSD 이승우 사장(44·사진)은 “도하라운드 의료 서비스 분야에선 합리적이고 투명한 시장원리가 확립될 것”이라면서 “한국 정부와 의료계는 ‘과거’에 매달려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있어 모든 것을 내놓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사장은 중학교 때 캐나다로 이민가서 미국 싱가포르 대만 등에서 근무하다가 94년 한국MSD 설립 때 모국에 왔다.
그는 “한국에서는 의료 소비자인 환자는 뒷전인 채 불투명하고 비합리적으로 정책이 결정되곤 하며 산업 논리에 국민 보건권이 무시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6년 동안 연 매출액을 3억원에서 1120억원 규모로 급신장시켜 제약업계에서 6년 연속 성장률 1위를 기록하는 등 뛰어난 경영 능력을 발휘했지만 이 과정에서 황당한 일을 많이 겪었다.
MSD사가 J제약사에 A라는 약의 판권을 줘서 복사약을 만들게 했다가 계약 기간이 끝난 뒤 ‘오리지널 약’을 시판하려 했더니 정부는 ‘후발 약’이라면서 약가를 J제약사의 약보다 싸게 책정하라고 강요했다. 또 생물학적 동등성 실험은 복사약이 오리지널 약에 모든 면에서 근접하는지를 보는 것인데 어떤 공무원은 오리지널 약에 대해 생물학적 동등성 실험을 요구했다. 영문 계약서를 제출했더니 한글이 없다며 서류를 반려한 적도 적지 않았다.
이 사장은 “현재 정부는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효과 좋은 신약보다는 저가의 약 처방을 유도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환자가 저가 약만 복용하면 치료 기간이 길어지고 결국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또 신약의 경우 개발 기간이 평균 15.3년 걸리는데다 후보 물질 1만개 중 1, 2개 만이 개발에 성공하는 점을 고려하면 약값이 비쌀 수 밖에 없는데도 단순히 신약이 비싸다며 처방을 억제하면 결국 의료발전을 저해하게 된다는 것.
그는 “스위스에 본부가 있는 국제제약협회(IFPMA)의 기준에 따라 의사들의 해외 학회 참가를 지원했는데 정부는 이를 문제삼았다”면서 “한국에서는 기업 감독도 부패 척결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의료 광고 규제도 시장 원리에 어긋난다는 것. 전문의약품 광고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환자의 알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며 일반의약품이나 검증받지 않은 민간요법 광고는 횡행하는 현실과도 맞지 않다는 것. 올해에는 제약회사가 각종 질병의 예방을 위한 캠페인 광고도 못하도록 규제가 오히려 강화됐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의료정책은 권한이 정부에 집중된 반면 책임은 민간에 있어 고비용 저효율일 수밖에 없다”면서 “근본적 해결은 모색하지 않고 ‘반창고식 처방’만 하고 있어 문제가 악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94년 국내의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미국의 국립경제연구협회에 의뢰, 한국의 의료보험 재정이 곧 바닥날 위험이 크다는 연구결과를 정부에 제출했지만 정부는 귀담아 듣지 않았고 현재 이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다. 정부는 민간의 전문가들을 관리 및 규제 대상으로만 여기지 말고 동반자로 여기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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