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8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테란의 황제’ 임요환을 물리친 ‘프로토스의 지존’ 김동수(21)의 게임철학은 의외로 소박했다. 신기술은 무엇이든 익혀야 직성이 풀리는 ‘테크노 키드’일 것이라는 기자의 예상을 뒤엎고 그는 “휴대전화에 인생이 끌려가는 것이 싫어서” 휴대전화도 얼마전 해지했다.
“프로토스는 이것 저것 다양하게 기술을 구사하지 않고 자기가 자신있는 전술로 밀어붙이죠. 이겨도 화끈하게, 져도 화끈하게! 제가 말하는 ‘낭만’이란 바로 그런 거죠.”
외모에서 풍겨지는 것처럼 그에게는 20대 초반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뚝심’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곰’ ‘농사꾼’ 등 별명이 많다. 그러나 게임 전문 정일훈 아나운서의 표현처럼 그는 게임에 임해서는 “불여우 중에 불여우”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상대방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곳에 기지를 건설하죠. 들키면 ‘끝장’이지만 들킬 리가 없어서 ‘끝장’날 수 없는….”
그는 8강전에서 김대건과 맞붙었을 때 기지를 적진 코 앞에 배치시키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강력한 속공으로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는 게임에 이기는 것 말고도 시청자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전술을 펴기 위해 노력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보통 지능으로는 프로토스의 ‘지존’ 자리를 유지하기란 어려워보였다.
“고등학교 땐 공부를 곧잘 했어요. 1, 2학년때 수능 모의고사 성적이 370점 정도는 나왔죠. 고 3때 게임에 미쳐 250점까지 성적이 곤두박질 쳤어요. 부모님의 반응이요? 한 마디로 ‘이 불효자식!’이었죠.”
처음 그가 프로게이머를 한다고 고집할 때만 해도 “그게 뭐하는 직업이냐”며 만류하시던 부모님이 지금은 가장 큰 후원자라고 한다.
하루 15시간씩 연습을 한다는 ‘연습 벌레’ 김동수도 가끔 “이러다 미치겠구나” 싶을 때가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였어요. 결승을 앞두고 사흘 밤낮을 연습하는데,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지는 거에요. 반바지 차림으로 그길로 달려나가 돌아다녔어요. 사생활이요? 전무하다고 봐야죠.”
프로게이머들의 수명이 길어야 20대 중반인 현 상황에서 김동수는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계획하고 있을까?
“지금의 게이머들은 ‘프로게이머’라기 보다는 ‘하드코어 게이머’들이에요. 그저 게임이 좋아서, 게임에 미쳐서 하는 친구들이죠. 제 역할이 있다면 앞으로 후배 프로게이머들이 커나갈 수 있는 기반을 닦는 ‘개척자’가 되고 싶습니다. 당장 5년 후 뭐 먹고 살지? 이런 걱정은 안해요.”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