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국수와 도전 5번기는 처음이예요.”
이 9단과 목 6단이 도전기에서 만난 건 이번이 세번째. 9기 기성전(당시 3번기)에선 이 9단이 목 6단을 2대0으로 셧아웃시켰으나 2000년말 속기전인 KBS 바둑왕전에선 목 6단이 2대1로 설욕했다. 하지만 목 6단은 속기전이 아닌 본격 도전 무대에서 이 9단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싶었을 것이다. 첫 5번 승부인 만큼 후회없이 두고 싶다는, 아니 꼭 이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목 6단의 대답 속에 숨어 있었다.
▼검토실…“이런 수가 있네요. 이 9단이 못보고 있는 것 같은데요.”
한국기원 검토실에서 백대현 4단이 바둑판 위에 수순을 쓱쓱 늘어놓는다.
곁에 있던 조훈현 루이나이웨이 9단, 윤성현 7단 등이 “그렇네, 목 6단이 거기만 두면 이 9단은 회복 불능이야”라고 맞장구친다.
▼대국실…초반 하변과 상변 전투에서 이득을 본 목 6단이 유리한 형세. 아직 이 9단을 완전히 뿌리치고 승리를 낚으려면 먼 길을 가야 하지만 일단 목 6단이 뜻한대로 바둑이 풀려나가가고 있었다.
백이 우상귀 1로 젖혀 놓고 손을 돌려 우하귀 3으로 막았을 때가 문제의 순간. 백 4단이 발견한 수는 흑이 5로 끊고 백 ‘가’ ,흑 ‘나’로 내려 빠지는 수. 백은 ‘다’로 단수쳐 흑‘라’와 교환시켜야 한다. 여기서 백이 손을 빼면 흑 ‘마’, 백 ‘바’, 흑 ‘사’의 수순으로 빅 또는 한수 늘어진 패가 난다. 안팎으로 엄청나게 큰 곳.
그러나 목 6단은 갈등하고 있었다. 우상귀의 수를 알고 있었지만 일단 후수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 것. 게다가 그는 승부사의 직감으로 이 9단이 그 수를 못보고 있는 것이 눈치채고 있었다.
‘이 9단이 모르고 있으니까 우상귀는 좀 더 있다가 손을 대도 괜찮겠지.’
목 6단은 흑 4로 손길을 돌렸다.
▼검토실…“에이∼, 이게 뭐야. 고작 후수 10집짜린데.”
흑 4를 본 검토실의 모든 기사들이 혀를 찼다. 골기퍼와 1 대 1 상황에서 헛발질은 한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목 6단도 우상귀 쪽 수를 못봤나.”
누군가가 탄식하듯 말했다. 백 5로 잇자 형세가 갑자기 미세해졌다.
▼복기…그러나 승부는 목 6단의 끈질긴 승부수가 성공하며 197수만에 흑 불계승으로 끝났다. 대국실로 우르르 몰려간 10여명의 프로기사들은 이 9단이 과연 우상귀의 수를 모르고 있었는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이 9단은 윤 7단이 우상귀 수를 보여주자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씩 웃었다. 그 수가 두어졌다면 승부가 더 빨리 났을 것이라는 듯.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