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의 아테네는 크기가 서울의 약 4배에 해당하는 2700㎢에 인구는 약 40만명이었다. 아테네는 기원전 8세기 중엽까지 왕정체제를 유지하다가 기원전 7세기에는 귀족 과두정치로 바뀌었다. 기원전 6세기에 와서 민주정치가 제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러한 장구한 정치변화를 거친 아테네는 페리클레스 시대(기원전 461∼429)에 와서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 페리클레스는 32년 간 집권하면서 권력을 행사하였지만 독재자는 될 수 없었다. 최고입법 및 행정관인 그는 최고집행위원 10인과 함께 시민대표로 구성된 민회에서 매년 1년 임기로 재선출되어야 했다.
▷집행부의 정책은 민회의 감독을 받아야 했고, 1년 임기로 매년 민회에 소환되어 청문을 받아야 했다. 만약 부정이나 독재의 기미가 있으면 아테네에서 가차없이 추방되는 사형보다 무서운 형벌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밖에 없었다. 페리클레스 치세에 아테네가 경제적 부, 문화와 함께 민주주의를 정상에 올려놓고 페르시아와 지중해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부패하지 않은 민주적인 지도자가 있었고 막강한 군사력 외에 위대한 ‘시민정신(노블레스 오블리제)’이 있었기 때문이다.
▷페리클레스시대의 아테네 시민정신과 이상은 다음과 같다. “①우리는 아름다움을 사랑하지만 사치하지 않으며, 지혜를 사랑하지만 나약한 의지에는 빠지지 않는다. ②우리는 경제적인 부를 개인적인 과시의 수단이 아니라 사회 봉사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③우리는 가난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으며 오로지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음을 수치로 여긴다. ④우리는 개인적인 일뿐만 아니라 공적인 일에도 참여해야 한다고 믿는다.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시민은 무관심한 자뿐만 아니라 사회에 쓸모없는 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박응격 객원논설위원·한양대 지방자치대학원장·행정학parkek@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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