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MCI코리아 소유주 진승현씨의 로비스트인 김재환(金在桓)씨가 미국으로 도피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뒤 연말연시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수사 열기가 급격히 식은 느낌이다.
당시 검찰은 김씨의 출국 사실을 40여일 만에 파악한 데 대해 “미숙하다는 비판은 감수하겠지만 ‘수사 의지가 없다’는 비난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철저한 수사를 다짐했다.
도피한 김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김은성(金銀星) 전 국가정보원 2차장과 정성홍(丁聖弘) 전 경제과장, 진씨 등 3인이 정관계 로비의 핵심이라는 설명도 검찰은 곁들였다.
그러나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검찰의 이런 다짐과 설명이 말로 그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게 한다.
‘진승현 게이트’의 핵심 의혹은 김 전 차장이 여권 실세 등의 명단이 포함된 가짜 리스트를 만들어 검찰 수사를 방해했고 4·13총선 당시 정치인들에게 돈을 살포했다는 것이다. 김 전 차장 윗선의 배후가 있다는 의혹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의혹에 대한 규명작업은 새해 들어 별로 진전이 없다. 새로운 소환자도 없고 수사상황에 대한 설명도 거의 없다.
검찰은 민주당 김방림(金芳林) 의원을 지난해 말 소환했으나 김재환씨가 도피하는 바람에 혐의 입증이 어렵다며 수사를 중지했다.
검찰은 “김 전 차장 등을 설득하고 압박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좀 더 지켜봐 달라”고 말한다. 수사팀 관계자들은 ‘성역 없는 수사’를 다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검찰이 말하는 ‘성역 없는 수사’는 행동으로 옮겨져 결과로 나타나기 전에는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불신이 깊어지면 또 다른 재수사뿐만 아니라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가 필요해질 수도 있음을 검찰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명건 사회1부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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