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공부한 P박사는 99년 대학측과 연봉 840만원에 계약했다. “첫해니까 그렇겠지”하며 1년을 보냈지만 학교측은 연봉에 관해 일언반구도 없었다. 참다못해 지난해 어렵사리 학교에 이의를 제기했더니 연봉을 1200만원으로 올려줬다. P박사는 올해도 처우를 제대로 안해주면 ‘폭탄선언’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는 “특히 사립대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임금착취’를 하고 있다”며 “인건비를 깎으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한 계약연봉제는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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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신규 임용되는 모든 교수는 계약제로 채용하고 내년부터는 대학에 따라 연봉제도 연차적으로 적용될 예정이어서 교수 사회에 회오리를 몰고 올 전망이다. 벌써부터 전국교수노동조합 등은 “경쟁만을 앞세운 교육정책이 학문발전은커녕 대학을 황폐화시킨다”며 반발하는 등 계약연봉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해 12월 31일 국무회의에서 ‘교육공무원임용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대학교원 채용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심사위원의 3분의 1 이상을 외부 인사로 구성하고 근무기간, 급여, 성과 등 계약조건을 대학과 교수가 정하도록 의무화한 것이 주요 골자다.
교육부는 당초 모든 교수에게 계약제를 적용하려 했지만 대학 교수들의 반발이 거세자 신규 교수만 대상에 넣는 선에서 후퇴했다.
김응권(金應權) 교육부 대학행정지원과장은 “사회 다른 분야에 비해 대학만은 아직도 경쟁의 무풍지대”라며 “교수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실적에 따라 대우하는 보상체제로 계약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번 교수는 영원한 교수’‘철밥통’ 등 교수사회를 보는 사회의 시각은 매우 비판적이다. 사실 일단 임용만 되면 사회적 대우는 물론 정년보장 등 특권을 누릴 수 있어 박사학위 소지자들은 누구나 대학교수를 꿈꾼다.
미국에서 국내 대학에 석좌교수로 온 K씨는 “미국 교수들이 연구실적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것과 비교할 때 한국 대학은 천국”이라며 “처음엔 이상했는데 몇년 지나니 정말 교수하는 맛이 난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석학들로 구성된 서울대의 최고자문위원단(블루리본 패널)도 보고서에서 전임강사 중 정년을 보장받지 못한 서울대 교수가 개교 이래 단 3명이라고 지적, “세계 수준의 학자를 배출하려면 적절한 보상과 철저한 교수평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재 시행중인 ‘기간제 임용’은 교수 직급에 따라 임용기간을 정한 것일 뿐 급여 등 근무조건을 대학과 교수가 정하는 본격적인 계약제와는 다르다.
이 기간제 임용도 부작용이 많아 ‘재임용 탈락’이 대학 분규의 불씨로 작용하기도 했다. 현행법상 임용기간이 끝난 교수의 지위는 임명권자가 재임용이란 적극적 처분을 취하지 않으면 재임용 탈락 통지 여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상실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공립대교수협의회와 교수노조 등은 미국 대학을 모델로 한 신자유주의적 계약연봉제가 대학을 황폐화시킬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박거용(朴巨用·상명대 교수)교수노조 부위원장은 “미국에서도 계약연봉제는 재정부담을 덜기 위해 전임교수의 채용비율을 줄이고 신분이 불안정한 시간강사의 채용을 늘리는 수단이 되고 있다”며 “우수인력의 확보를 통한 경쟁력 강화보다는 비정규직 교수만 양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교수시장이 좁아 대학간 전직이 어렵고 ‘재임용 탈락〓매장’으로 평가되는 현실에서 계약연봉제는 교수의 신분안정을 송두리째 흔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국공립대교수협의회는 “업적 평가가 공정하고 임용권자와 교수가 대등한 관계에서 계약할 수 있는 풍토가 전제돼야 한다”며 “구제 장치가 완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계약연봉제를 강행할 경우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국내 대학들은 본격적인 계약연봉제 도입에 대비해 교수 업적평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4월 현재 181개 4년제 대학 중 84.5%인 153개교가 업적평가제를 도입해 인사나 연구비, 성과급, 연구년(안식년)제 등에 반영하고 있다.
99년 연봉제를 도입한 지방 K대는 연구 실적 등에 따라 최상위(A등급)와 최하위(E등급)에 속하는 2.5%의 교수 상여금을 2배 가까이 차이를 두고 있다.
또 업적 평가시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학문 특성과 사회응용 정도가 달라 일괄 평가가 어렵고 학술지 평가도 안된 상태에서 논문 건수만 따지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영남대 김병주(金秉柱) 교수는 “과도한 양적 경쟁을 막기 위해 질적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평가 기간을 당해 연도보다는 2∼3년 내외에서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인철기자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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