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에 있을 미국재무분석사(CFA) 자격증 1차시험을 통과하는 게 이 과장의 올해 최대 목표. 정식퇴근이 오후 6시지만 밤 10시 이전에는 집에 들어갈 생각도 않는다. 토 일요일에도 책을 놓을 수 없어 ‘하숙생 아빠’라는 소리도 듣는다. 물론 동료 직원들과의 ‘퇴근후 딱 한잔’은 물 건너간 지 오래다.
한국의 과장들은 지금 불안하다.
기다리기만 하면 차장 부장으로 착착 승진하던 ‘좋은 시절’은 옛날 이야기다. 언제든지 필요없는 사람은 내보내고 봉급도 직급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주는 연봉제 시스템이다. 자칫 한눈 팔다가는 후배 대리보다 월급봉투가 얇아진다. 자칫하면 후배를 ‘팀장님’으로 모셔야 하는 상황도 오지 말란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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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과장들은 근무시간에는 죽으라고 일하면서 근무시간 외에도 그냥 편안히 보낼 수 없다. 너도나도 자기 몸값 올리기에 매달리고 있다. 자격증 따기나 영어공부도 그런 필사적 노력 가운데 하나다.
두산의 김래성씨(37)는 2년차 과장. 작년 송년회 때 동료들과 두가지 맹세를 했다. 체력단련과 영어공부.
신입사원 3명이 모두 해외연수를 하고 토익 점수가 900점대라는 데 충격받았다. 외국인이 전화하면 후배들에게 수화기를 넘겨야 하는 수모를 당해야 할 판. 김 과장의 올해 토익시험 목표는 800점. 다음달부터 오전 6시에 시작하는 영어학원에 등록하기로 했다.
대기업 과장급이면 보통 대학 학번으로 80년대 중반 정도. 김 과장은 “그 당시에는 너도나도 데모하기에도 바쁜 때여서 요즘 신입사원들과 달리 자격증 공부, 영어 공부하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며 “그게 지금은 개인 경쟁력 열세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주변에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이런 저런 자격증이나 다른 공부하는 동료가 의외로 많다”며 “일찌감치 폐기처분당하기 싫으면 후배들보다 못한다는 소리는 안 들어야 할 것 아니냐”고 귀띔했다. 위에서 눌리고 아래에서 치받히는 요즘 과장들의 공통적인 심정이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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