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검찰총장 순시가 '행차' 인가

  • 입력 2002년 1월 9일 18시 29분


검찰이 또 한번 국민을 실망시켰다. 대전지검이 신승남(愼承男) 검찰총장의 초도순시를 위해 경찰 순찰차의 에스코트를 요청하는 등 시대착오적인 영접 준비를 한 것은 이미 희미해진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마저 깎아내리는 작태다. 그동안 국민의 비난을 받아온 검찰이 자중하기는커녕 아직도 스스로를 특별한 예우를 받아야 할 권력기관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신 총장은 대통령과 3부 요인, 전직 대통령이나 누릴 수 있는 순찰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대전에 도착했을 것이다. 시쳇말로 ‘나리님의 행차’가 될 뻔했다. 또 검찰직원이 총장과의 ‘부드러운 대화’를 위한 것이라며 만찬에 초청한 유지들을 상대로 사전에 길흉사까지 꼬치꼬치 캐물어 불쾌하게 했다니 검찰은 도대체 어느 시대의 조직이라는 말인가. 실망과 함께 분노마저 솟는다.

신 총장은 불과 한달 전 국회에 의해 탄핵위기에 몰렸다가 집권당의 감표 거부라는 편법 덕분에 겨우 살아났다. 탄핵 사유였던 진승현, 이용호 게이트만 하더라도 최근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 야당의 탄핵안 발의가 정치 공세만은 아니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신 총장이 신년사에서 검찰의 개혁을 강조했듯이 지금은 검찰 조직 전체가 내부 개혁과 실추된 위상을 바로잡기 위해 진력하고 있어야 할 때다. 그러나 이번 ‘행차 소동’은 검찰이 과거의 행태에서 달라지지 않고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신 총장의 개혁 의지가 검찰조직에 제대로 전달되어 시행되고 있다면 이번과 같은 군림하려는 권위주의적 프로토콜을 준비했겠는가. 신 총장은 이번 소동을 계기로 자신의 지휘능력에 부족함이 없는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총장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검찰 조직도 총장의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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