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일손을 멈추고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문 양준범과장(34). 아직 인생 운운할 나이는 아니지만 얼마전 전해들은 후배 얘기가 떠오를 때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다.
“정모라고 있잖아. 걔가 이번에 또 억대 연봉을 받고 회사를 옮긴다더라.”
양 과장은 담배 한 모금을 다른 때보다 더 깊숙이 빨아들여본다.
3년전만 해도 남부러울게 없었다. 당시는 벤처붐이 한창일 때. 양과장은 모두들 가고싶어하던 인터넷 업체 N사로 자리를 옮겼다. 연봉은 줄었지만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게 매력적이었다. 회사가 예정대로 코스닥에 등록만 하면 우리사주로 ‘대박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도 컸다.
회사 창립 멤버였기에 새롭게 조직을 만들고 업무를 개척해나가다 보니 몸은 고달팠지만 매일 맞닥뜨리는 난관은 신선한 자극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새롭고 밤새워 일을 해도 즐겁기만 했는데…. 전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후배가 계열회사로 옮겨오면서 ‘인생 역전’의 서막이 올랐다.
후배가 옮겨온 회사는 솔루션 기술로 특화된 회사였다. 닷컴 열풍이 식으면서 양과장의 회사는 스포트라이트에서 멀어진 반면 후배네 회사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해말 그 계열사는 코스닥에 등록했고 후배는 우리사주로 큰 돈을 벌었다. 그 후배는 최근 억대 연봉에 또다른 회사로 옮겨가면서 양과장을 더욱 허탈하게 했다. 벤처 열풍에 휩쓸려 엎치락 뒷치락하다보니 양과장은 과장 때 이미 ‘인생 역전’을 맛본 셈이다.
지난 연말 대학 동기 모임에서 그는 벤처기업으로 옮겼다가 비슷한 처지가 돼버린 친구들과 진하게 술 한잔을 나눴다. 회사에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선배들 세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돈의 논리’에 따라 이직을 밥먹듯 하는 후배들 세대도 아닌게 그들의 자화상이었다.
“하지만 아직 승부가 완전히 끝난건 아니다”라고 양과장은 힘주어 말한다. 회사의 초기부터 성숙기에 접어든 오늘까지 그가 해온 일들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라는 것. 그리고 그 경험이 자신의 인생을 튼튼하게 받쳐줄 초석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5년뒤, 10년뒤에 누가 성공해있을지는 두고 봐야죠. 인생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지 않습니까.”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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