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패션 혁명가의 일과 사랑 고독 '코코 샤넬'

  • 입력 2002년 1월 11일 17시 30분


◇ 코코 샤넬/앙리 지델 지음 이원희 옮김/520쪽 1만8000원 작가정신

‘성공한 삶의 이면에 도사린 치명적 고독.’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의 삶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모자 디자이너로 출발해 ‘일하는 여성을 위한 옷’이라는 일관된 패션 철학을 가지고 자유롭고 간편한 복장을 만들어 낸 코코 샤넬. 새로운 소재 개발을 통한 독자적인 패션, 수많은 악세서리, 전형적인 파리풍의 향수(샤넬 넘버 5)로 세계를 석권한 천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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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패션 혁명가로 군림하면서 ‘내겐 일하는 것이 쉬는 것이다. 나는 일요일이 가장 싫다’고 말하던 그녀의 삶은 실제로는 고독과의 처절한 투쟁이었다. 이 책은 열두살 때 수도원에 고아로 버려진 뒤 스무살에 밤무대 가수에서 마침내 20세기 문화 예술인의 한명으로 선정(타임지)되기까지 파란만장했던 그녀의 삶을 다룬 평전이다.

일과 사랑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그녀는 많은 남자들과 사랑을 나눴지만 마지막까지 그녀를 지켜 줄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 샤넬이 원했던 것은 결혼이나 육아 같은 평범한 여성의 삶이 아니었다. 그녀는 남자를 사랑했을 뿐, 가지려 하지 않았다. 평등한 영혼의 교류를 원했다.

저자(물론 남자다!)는 샤넬을 일에서는 성공했지만 삶에서는 실패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일을 가진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기자가 보는 샤넬은 여자 남자를 떠나 멋진 인생을 살다간 자유인이었다.

샤넬이 마음을 주었던 첫사랑은 유부남인 영국인 사업가였다. 그러나 그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한다. 한동안 일을 놓고 칩거하던 그녀는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콕토 등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문화 예술의 은밀한 후원자로 나선다. 이즈음 그녀의 이름을 딴 향수 샤넬 넘버 5가 출시된다.

그녀의 두 번째 사랑은 영국의 한 공작. 그는 샤넬에게 열렬히 구애해 결혼을 원하지만 샤넬은 밤무대 가수시절 받은 낙태수술의 후유증 때문에 아이를 낳아줄 수 없다고 거절한다. 공작이 원했던 것은 샤넬의 자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그녀는 지독한 외로움속에서 러시아의 드미트리 대공, 초현실주의 시인 르베르디, 광고 디자이너 폴 이리브 등 당대 예술가들과 뜨거운 사랑을 나눴지만 그들은 그녀의 부와 명성만을 사랑했다. 마지막 사랑이었던 이리브 역시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남자들을 보면 나는 언제나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업에 종사하고 있으면 그게 어떤 일이든 처량해 보였고 아무일도 하지 않고 있으면 보기가 딱했다.’

‘결혼? 일을 그만두고 살아야 할 뿐 아니라 늘 어울리는 작가들과 예술가들, 가족과도 결별해야 한다. 뜨개질이나 하고 하루에도 여러차례 옷을 갈아 입을 것이고 정원에서 아름다운 장미꽃들을 완상하기나 하는 생활, 응접실 벽난로에서 불을 쬘 때 뿐, 그 자리를 뜨면 대번에 몸이 얼어붙을 듯 썰렁한 집. 거기에 있으면 나라는 존재는 없다.’

이처럼 자의식이 강했던 그녀였지만 사랑하는 남자들 앞에서는 스스로 ‘내 속에는 창녀의식이 있다’고 인정할 정도로 순종했다. 이 책은 한 여성의 치열한 내면기록이기도 하지만 성공한 사업가가 시장을 어떻게 주도해나갔는지에 대한 경영전략도 담겨있다.

샤넬은 디자이너들이 여성의 몸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옷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샤넬라인’을 고안했다. 그녀가 처음 투피스를 만들었을 때 언론은 조소했지만 ‘뉴룩’을 고대하던 소비자들은 허리를 조이는 옷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그녀의 옷을 입었다. 발꿈치가 드러나는 샌들, 검정색 드레스를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것도 그녀였다.

2차 세계대전 때는 평화 협상을 위해 처질을 설득하는 역사의 한가운데 섰던 여인, 15년을 쉬었다가 일흔한 살 나이에 다시 패션계에 성공적으로 복귀한 불사신, 아름다움과 지성,활화산의 에너지를 갖추고 수많은 남성들을 매료시켰던 그녀는 1971년 1월 어느 일요일, 여든여덟의 나이에 파리의 한 호텔방에서 홀로 세상을 떠났다. 이원희 옮김, 원제 co co chanel.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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