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숲과 흙에서 건진 삶의 지혜 '지평선을 향해 걷다'

  • 입력 2002년 1월 11일 17시 37분


이 책은 ‘월든’으로 널리 알려진 소로우가 생전에 쓴 방대한 일기 가운데 ‘대지’를 주제로 한 글만을 따로 모은 책이다. 소로우는 1817년 메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태어나 대학 시절을 빼고는 평생 동안 콩코드의 숲 속에서 살았다.

마치 야생동물만큼이나 자연에 대한 예민한 후각과 시인의 감수성을 갖춘 그가 바라보는 ‘대지’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살아 있는 생물들의 발꿈치를 받쳐주는 생명의 디딤판이다. 그는 생명의 파수꾼처럼 지평선을 향해 걷는다.

소로우는 점차 사라져가는 자기 영역을 근심 많은 오소리가 순찰하듯 숲으로 난 야생의 길들을 꼼꼼히 살피고 또 들여다본다. 이 글들은 그 숲 속의 안내서이며 순찰일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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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야생동물과 인디언과 함께 점점 훼손되어가는 숲을 들여다보며 깊게 한숨쉰다. 그 한숨소리는 방금 베어낸 거목의 우듬지에 있던 둥지를 찾아 배회하는 어미새의 안타까운 날갯소리와도 같으며, 모피상과 사냥꾼들에게 부모 형제를 빼앗긴 비버가 커다란 빈집에 홀로 남아 하릴없이 흔드는 체머리와도 같은 성질의 것이다.

숲의 정적을 깨뜨리는 문명에 대한 소로우의 반응은 엄살처럼(?) 민감하다.

“하루에 적어도 4시간 동안 세상사를 완전히 떨쳐버리고 언덕과 들판으로 산책하지 않으면, 내 건강과 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다.”

“거의 매일 밤 나는 증기기관이 증기를 뿜어내는 소리에 잠을 설친다. 그 소리 때문에 제대로 꿈도 꿀 수가 없다. 이제 안식은 사라졌다. 인류가 한가로이 지내는 모습을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황홀경에 빠질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의 독백이다. 소로우가 살아서, 21세기 문명의 도시를 거닐고 있다면 위의 글을 어떻게 바꾸어 쓸까 궁금하다. 도시인들 가운데 4시간은커녕 단 40분만이라도 “세상사를 완전히 떨쳐버리고” 산책할 언덕과 들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니 일 년 동안 맨발로 흙 한 뼘을 밟아볼 기회는 몇 번이나 될까.

소로우가 살았던 환경에 오늘을 비추어보는 것은 우울하지만, 소로우가 안내하는 숲길로 따라들어가는 것은 즐겁다. 콩코드의 광활한 야생 지대, 바람에 물결치는 자작나무 숲, 표범 개구리와 나누는 열두 시간의 대화, 달빛을 안고 넘실대는 강물, 우연히 눈길을 마주친 야생동물의 투명한 눈망울….

성큼성큼 숲 속으로 사라지는 소로우를 쫓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 뒤를 쫓다보면 금새 소로우의 흔적은 없어지고 광활한 콩코드의 대지만 펼쳐진다. 길을 잃든, 길을 찾든 그것은 각자의 몫이다. 소로우는 가능한 주관적 영탄을 배제한 채 카메라처럼 풍경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내려 애쓴다. 풍경을 보지 못하고 소로우의 목소리만 쫓는다면 길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곧 저 매혹적인 “대지의 영혼이 어떻게 쪼개어진 형태로든 내 속에 이미 들어와 있음”을 깨닫게 된다.

병든 소가 열 걸음에 제 병 나을 약초를 찾아내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도 오랜 유전 인자 속에 새겨진 생의 본능이 문명에 찌든 우리를 이끌고 저 숲길로 인도하는지도 모를 일이다.박윤정 옮김, 원제 ‘On Land’(2001).

반 칠 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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