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아의 책 사람 세상]놓치고 싶지 않은 책들

  • 입력 2002년 1월 11일 17시 37분


동서고금을 통틀어 다사다난하지 않은 연말연시가 어디 있으랴. 지난해도 세계는 들썩거렸고, 정치는 어지러웠고, 사람들이 살기는 팍팍했다. 개인적으로는 오직 책과 함께 하는 시간만이 즐거운 한 해였다. 새해를 맞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억에 남는 책, 널리 같이 읽고 싶은 책을 몇 권 골라 보았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명실상부한 젊은 중추인 80년대 학번들에게는 우선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 마샬 버만의 ‘맑스주의의 향연’(이후, 2001)을 권하고 싶다. ‘맑스주의’라는 말에서 묻어나는 딱딱한 느낌과는 달리, 이 책은 맑시즘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서는 아니다. 짤막한 서평과 에세이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오히려, 눈이 핑핑 돌아가는 이 세상에 아직도 희망은 있는가 하는 물음과 그에 대한 낙관적인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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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굳어진 것은 사라지는” 세상에서 시장의 요구에 우리 자신을 내다팔지 않는 새로운 삶은 가능할까? 세계 도처에 넘쳐흐르는 빈곤과 절망과 참상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따스한 눈으로 인간의 잠재력을 바라본다.
9·11 테러 이후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정작 이슬람권 문학에 대해서는 별로 소개되지 않았다. 샐먼 루시디의 ‘악마의 시’(문학세계사, 2001)는 정통적인 이슬람 문학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이슬람권이 서방 국가에 대해 느끼는 애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이슬람 교도들에게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책은 이미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소설 중에서는 걸작의 위치를 확고하게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혼성적인 문화가 지배하는 지구촌에서, 인간의 정체성과 윤리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를 환상적인 기법으로 탐구하고 있다.
SF나 판타지 소설 등의 장르 소설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장르소설과 본격문학의 경계에 놓여 있는 ‘경계 소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온 ‘미사고의 숲’(열린책들, 2001)도 독특한 향기를 풍기는 책이다. ‘미사고(mythago)’란 신화(myth)와 심상(imago)을 결합해 작가가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작가는 인간의 무의식에 깃들인 원형적 심상을 ‘숲’이라는 상징으로 탐구해 나간다. 항상 희망찬 새해로 시작해 다사다난한 한 해로 끝맺음을 하는 것보다, 올해는 어둑신한 숲길을 걷는 듯한 신비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차분한 마음으로 책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송경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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