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도서]'왜 끊임없이 써 왔는가·왜 침묵해 왔는가'

  • 입력 2002년 1월 11일 18시 36분


‘왜 끊임없이 써 왔는가·왜 침묵해 왔는가-제주도 4·3 사건의 기억과 문학’/김석범·김시종 지음 헤본샤(平凡社) 2001년

이번에 소개할 책은 ‘재일조선인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김석범과 시인 김시종의 대담집이다.

김석범은 대작소설 ‘화산도’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우리에게도 꽤 알려진 작가이며, 한국에서는 낯선 김시종은 ‘니이가타(新潟)’ ‘이카이노(猪飼野) 시집’ ‘광주 시편’ 등의 시집을 통해 일본 평단에서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다.

이번에 출간된 대담집은 이 두 작가의 반 세기에 걸치는 문학 활동의 발자취와 그 배경을 ‘제주도 4·3 사건’이란 프리즘을 통해 격정적으로 토로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이들의 대담을 통해서 숨을 죽인 채 엄청난 사건의 진실 앞에 서게 된다.

두 작가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조선 사람의 문학 활동은 일본어가 아니라 조선어로 해야 한다”는 방침을 고수하던 조총련에서 떨어져나와 일본어로 작품을 써왔다. 김석범은 오사카에서, 김시종은 원산에서 태어났지만 두 사람에게 제주도는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김석범은 1943년부터 44년까지 제주도에 머물렀고, 1945년부터 1946년까지는 일본과 서울을 왕래하다가 1946년 여름 완전히 일본으로 건너 간다. 김시종은 제주도 제주읍(현 제주시)에서 ‘해방’을 맞았고 1949년 초여름에 일본으로 건너 갔다. 이 미묘한 시간의 어긋남이, 사실은 이 두 작가의 활동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번 대담에서 가장 크게 다룬 ‘4·3 사건’에 대해 두 사람은 극히 대조적인 반응을 보인다. 적어도 1년 이상을 사건 현장에서 머물렀던 김시종은 구체적인 언급을 피해왔지만, 김석범은 일본으로 도망쳐 온 사람들을 통해서 3만여명이 학살당한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듣고서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즉, 김시종은 제주도에서의 경험을 침묵의 단단한 껍질로 덮어 왔음에 비하여, 김석범은 현장에 있지 못했다는 무념함을 창작 활동의 커다란 동기와 원동력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김시종에게 있어서 제주도에서의 기억이란 언어화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뛰어 넘는 무게를 가지는 것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는 그것을 가슴 깊숙히 묻어 둘 수 밖에 없었을 것이리라.

그렇다고 김시종이 그 아픔의 기억을 작품화하는 것을 포기한 것 같지는 않다. 대담 마지막에서 그는 “민중의 승리 장면, 민중의 고민 등을 쓴다면 일반 독자의 좋은 반응을 불러 일으킬 요소가 많기는 하지만, 무언가 철학적인 것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그가 말한 “상념의 깊은 곳”이 어떤 작품으로 형상활 될 것인지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듯하다.

이연숙(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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