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그 약]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 입력 2002년 1월 13일 17시 29분


“선생님, 글리벡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것만이 저를 살릴 수 있다는데요.”

최근 어느 말기 암환자로부터 들은 말이다.

“그 약을 써서 살릴 수만 있다면 물론 드시게 해야죠. 그러나….”

만성골수구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이 본격적으로 유통되면서 오남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뛰어난 치료 효과를 보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말기 암 환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작정 복용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만성골수구 백혈병은 몸 속 염색체가 비정상적으로 결합해 이상 단백질을 계속 만들어내서 생기는 병이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정보를 바탕으로 이상 단백 효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물질을 찾는 데 몰두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글리벡.

많은 사람이 글리벡이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글리벡은 종류가 다양한 전체 백혈병 가운데 15% 정도인 만성골수구 백혈병에만 효과가 있다. 모든 암 치료에 효과를 보이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다른 약과 마찬가지로 글리벡도 부작용이 있다. 구역질 근육통 설사 부종 혈구감소증 등이 나타날 수 있다. 글리벡 복용으로 암이 완치되는 것도 아니다. 먹기에 간편하도록 만들어졌지만 평생 복용해야 한다.

또 일부 만성골수구 백혈병 환자는 약에 내성을 보였고 병이 악화됐다. 환자 몸 속의 유전자가 변하면서 ‘약발’도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복용량이 늘어날수록 글리벡에도 ‘끄떡’하지 않는 암세포가 역시 늘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글리벡은 학계에서 대단한 인정을 받았다. 정상세포와 암세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기존 항암제와는 달리 암세포만 골라서 공격한다는 점에서 차세대 항암제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의는 글리벡이 만성골수구 백혈병의 근본적인 치료제가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완치를 위해서는 골수이식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환자들의 절박한 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글리벡의 효능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나치게 약물에만 의존하다가는 다른 치료법으로 완치할 수 있는 시기마저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자료제공 의학정보사이트 버추얼엠디

윤성수(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www.virtualm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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