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하의 만화세상]박희정 "역사 판타지 그려보고 싶어요"

  • 입력 2002년 1월 13일 17시 39분


2001년 박희정은 한 권의 만화책과 한 권의 일러스트집만을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가상의 공간 웰던 페이크에서 펼쳐지는 세 편의 연작만화를 모은 ‘The Stupid’는 제목처럼 순진하고 착한 바보들을 그린 작품이다.

이보다 한참 전인 1999년에 출판된 만화 ‘마틴 앤 존’은 서로 사랑하지만 함께 하지 못한 게이 커플 마틴과 존의 비극을 그린 만화다. 그보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가면 박희정의 대표작이자 한국만화의 소중한 성과 중 하나인 ‘호텔 아프리카’를 만나게 된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흑인과 동성애자, 미혼모란 낯선 등장인물들을 처음으로 만났다. 누구도 쉽게 그리지 않았던 타자의 모습을 한 소수자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박희정은 자신의 만화를 통해 인간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조금씩 늘려갔다. 작품에 등장시킨 소수자에 대해 작가는 “그동안 금기시 되어 도드라져 보일 뿐이지, 기본적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똑같은 것이다. 나는 동성애자나 흑인과 같은 소수자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1993년 순정 만화 잡지 ‘윙크’ 창간과 함께 데뷔한 박희정은 남자 고등학생 배구선수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I can’t stop’을 발표한 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3년간 ‘호텔 아프리카’를 연재했다. 피드백과 내레이션, 현란한 앵글 변화와 적절하게 삽입되는 컷들은 정교하게 분할된 칸들에 실려 군더더기 없는 영상으로 구현됐다. 빠른 전개와 느리고 유장한 전개가 서로 교차하고, 유머와 진지함에 서로를 끌어당긴다. 거기에 세심한 배경과 작화의 탁월한 조형적 아름다움이 더해져 박희정의 만화가 완성됐다.

지난 해는 박희정에게 있어 안식년이었다. 그 긴 휴식을 바탕으로 2002년부터 새로운 연재를 시작한다고 한다. 새로운 연재작 ‘Fever’는 청소년물이지만 이른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전형적인 학원물은 아니다.

“학교 밖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대안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했는데, 너무 광범위해지는 것 같아 학교 밖 아이들의 고민, 학교의 문제점 등을 다뤄보려 고 해요.”

작가는 앞으로 SF와 역사장르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고대를 배경으로 판타지가 녹아 들어간 작품을 하고 싶다”는 작가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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