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재호/'엔론게이트' 부시 새 시험대

  • 입력 2002년 1월 13일 18시 09분


미국의 에너지기업 엔론사를 둘러싼 정경유착 의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리더십에 치명타를 안길 것으로 보인다. 로런스 린지 백악관 경제수석을 비롯한 그의 측근들이 엔론사로부터 대가성 정치자금이나 주식을 받았다는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부시의 리더십은 평가받을 만했다. 그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결정을 내렸으며 한 번 내린 결정으로부터 물러서지 않았다.

부시의 리더십은 흔히 ‘단순성의 미학’으로 표현된다. 구체적인 사항은 아랫사람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큰 원칙과 방향만 정해준다. 그는 선천적으로 ‘디테일한 것’은 싫어한다. 일단 일을 맡기면 부하를 믿는다.

전쟁과정에서 부시는 미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 밖으로는 러시아와 파키스탄까지 움직여 반(反)테러 국제연대를 구축하는데 성공했고, 안으로는 결단력과 함께 가슴이 따뜻한 지도자임을 보여줌으로써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그런 부시에게 ‘엔론 게이트’는 곤혹스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백악관은 물론 의회의 핵심 측근들까지 연루됐을 가능성이 커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들은 대부분 부시의 텍사스 인맥들이다.

측근의 부패로 역사에 오점을 남긴 대표적인 미 대통령으로는 제29대 워런 하딩(1921∼1923·공화당)이 꼽힌다. 하딩은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리더십 평가에서 언제나 최하위(42명 중 42위)를 면치 못한다. 여기에는 측근의 부패가 큰 역할을 했다.

하딩과 매일 밤 포커를 즐기던 친구들은 공금횡령과 직권남용으로 수백만달러를 챙겼다. 내무장관이기도 했던 앨버트 폴은 와이오밍주의 티포트 돔에 있던 연방정부 소유의 유전을 개발업자에게 넘겨주고 수십만달러의 현금과 주식을 뇌물로 받았다. 유명한 ‘티포트 돔 독직’사건이다.

하딩은 알래스카 여행에서 돌아오던 중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심장마비로 임기도 채우지 못한 채 숨졌다. “나의 원망스럽고 신의 저주를 받을 친구들…. 그들은 나로 하여금 수많은 밤을 뜬눈으로 마룻바닥에서 서성이게 하는 녀석들입니다.” 그는 주변의 비리를 알고 이렇게 탄식했다.

부시를 하딩에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하딩은 여자문제도 복잡했고 평소 리더로서의 자질과 능력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측근들의 비리로 리더십에 흠집이 났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정치학자 리처드 뉴스타트는 리더로서의 대통령의 힘은 ‘설득’에서 온다고 했다. 헌법에 의해서 보장된 권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하를, 정적(政敵)을, 그리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미 대통령의 진정한 힘이라는 것이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1945∼1953·민주당)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기에 온종일 앉아서 나의 설득이 없더라도 일을 할 사람들에게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설득할 것이다.… 이것이 대통령이 가진 권력의 전부이다.”

설득할 수 있는 힘은 도덕성에서 나온다. 대통령의 도덕성에는 함께 일하는 측근들의 도덕성까지 포함된다. 자신과 주변이 깨끗하지 않고서 누구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아프간 전쟁을 통해서 리더십을 새롭게 평가받은 부시 대통령이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로 우뚝 설 수 있으려면 ‘엔론 게이트’에 연루된 측근들의 의혹부터 말끔히 해소해야 한다.

이재호 국제부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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