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경기 예측이란 것이 각종 돌발 변수 때문에 항상 정확할 수는 없지만 경기가 곧 좋아질 것이라고 바람잡던 정부가 막상 경기상승기에 오히려 반대 주장을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것이 단순히 작년 내내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한 치 앞의 경기조차 못 맞혀 곤혹을 치른 데 따른 반사적 신중함이라면 모른다. 그러나 재정의 조기 집행을 고집하기 위한 사전 분위기 조성에 목적이 있다면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정부는 수출과 투자 모두가 아직 부진한 상황이기 때문에 경기가 회복세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하지만 최근 전경련은 회장단 회의를 통해 반도체 경기와 미국 경기의 조기 회복 가능성으로 올 들어 수출이 탄력을 받고 있다고 기업의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전경련은 특히 정부가 재정의 조기 집행을 강행할 경우 하반기의 경기 과열을 예고했는데 경기 부양시 우선적 수혜 집단인 업계가 오히려 걱정할 정도라면 이 주장은 객관적 신뢰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 보아도 나라 빚이 엄청난 속도로 증가해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했던 균형재정 시기를 불과 1년 만에 사실상 스스로 포기한 터에 재정 절약의 노력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정책이 집행된다면 이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정부가 재정의 조기 집행을 견지하는 것은 순수한 경제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정치논리가 정부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갖게 한다. 아닌게 아니라 역대 어느 정권도 대선이든 총선이든 선거가 있는 해에 재정을 긴축한 적은 거의 없다. 집권당은 항상 재정 살포를 통한 득표의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며 이번 정권이라고 해서 근본이 달라졌다고 볼 특별한 근거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만일 정부가 득표를 위한 선심정책에 눈이 어두워 경제 상황과 관련 없이 재정의 조기 집행을 강행한다면 이제 겨우 회복 단계의 우리 경제는 단기간의 과열 끝에 다시 거품에 뒤덮인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 결과를 어느 정권이 책임질지는 몰라도 고통의 당사자가 국민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는 점에서 정부는 재정의 조기 집행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규민기자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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