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유윤종/‘조수미 모시기’ KBS 무리수

  • 입력 2002년 1월 14일 18시 08분


KBS는 13일 생방송으로 ‘월드컵과 아시아경기 성공을 위한 국민대화합 신년음악회’를 내보냈다. 김대중 대통령도 참석한 이날 공연에는 월드스타인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출연해 분위기를 돋우었다. 생방송이 끝난 뒤 관계자들을 위한 리셉션이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박권상 KBS 사장은 외국에 나가 있는 조수미씨를 이날 공연장으로 ‘모셔온’ 과정에 관한 비화(秘話)를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어젯밤 호주에서 조수미씨가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그 순간 ‘이제 됐다. 성공이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조씨를 이번 음악회에 출연시키는 일은 절망적이었습니다…조씨는 어젯밤 8시부터 1시간반 동안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에서 단독 공연과 DVD 녹화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이날 시드니발 서울행 비행기 출발시간은 밤 10시15분. 9시반에 공연이 끝나고 공항까지 가는 시간을 합치면 물리적으로 비행기 타기가 불가능했습니다.”

KBS는 그러나 호주 측에 ‘중간휴식 20분과 앙코르곡 생략’을 요구해 관철시킨 뒤 호주경찰의 호송 하에 조씨를 공항으로 보내 서울행 비행기에 오르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콘서트 중간에 휴식시간을 갖고 출연자가 관객들의 요청에 따라 앙코르곡을 부르는 것은 국제적인 관행이다. 만약 거꾸로 서울에 온 호주 출신의 세계적 소프라노가 중간 휴식 없이 공연하고 앙코르도 받지 않은 채 황급히 떠나버렸다면 우리 관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은 ‘무리수’와 ‘하면 된다’ 정신보다는 세계에 통용되는 매너와 관행 준수, 올바른 절차와 순서를 밟아나가는 것이 월드컵의 성공을 위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KBS의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한국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유윤종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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