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부동산]서왕진/수도권 허파 갉아먹는 부동산대책

  • 입력 2002년 1월 16일 18시 10분


정부가 최근 발표한 주택시장 안정대책은 부동산 투기를 막는 데 있다기보다는 마치 주택경기 활성화 기조를 조금도 손상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처럼 보인다. 따라서 과도한 투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서울 강남지역의 아파트 분양권 전매자에 대해 세무조사를 하겠다는 엄포 외에는 부동산 경기에 악영향을 주는 어떤 다른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반면 주택 55만호 건설, 주택자금 및 세제지원의 강화, 심지어 서울 반경 20㎞ 이내에 있는 개발제한구역 해제지역 11곳에 260만평의 택지를 개발하겠다는 방안 등 주택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는 최근까지 계속된 정부의 주택정책 기조를 보면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현 정부는 분양가 자율화, 분양권 전매 허용, 양도소득세 인하 등 주택관련 규제를 지속적으로 완화해 왔다. 또 원활한 택지 공급을 명분으로 수도권 남단의 핵심 녹지인 판교를 조기 개발하기로 하고 대규모의 그린벨트 해제와 자연보전권역 내 택지개발 규모 확대 등의 정책을 추진해 왔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부동산 투기라는 위협요인에 대한 대책으로서 너무 안이하다. 현재 정부는 저금리로 갈 곳이 없는 자금을 흡수할 만한 다른 적극적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주택경기 활성화 대책은 필연적으로 부동산 투기 바람을 불러일으킬 위험을 안고 있다. 아파트 한 채 값이 순식간에 5000만원이나 폭등한 이번 사태는 이런 조짐을 명확히 보여준 것이다.

또한 이번 대책이 안고 있는 더욱 심각한 문제는 수도권 집중억제 및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우리 국토정책의 기본 방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정부가 제시한 11곳의 택지개발 지역은 회색 콘크리트 덩어리인 서울이 무분별하게 확장되는 것을 녹색의 벨트로 막아주는 마지막 보루다. 이곳을 정부가 앞장서서 개발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미 포화상태인 서울 진입 교통량에 대한 아무런 대책 없이 서울 20㎞ 이내 지역에 10만호나 되는 주택을 짓겠다니 그 과감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우리 국토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 지역에 46.3%의 인구가 밀집되어 있으며 제조업의 57%, 금융의 66%, 대학의 42% 등이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수도권 과밀집중은 이미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번 대책은 결국 수도권에 지속적으로 주택과 학교, 상업시설 등 돈과 일자리를 제공해서 수도권에 인구를 유입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정부가 주택경기 활성화라는 단맛에 빠져 형식적인 부동산 대책이나 장기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수도권 집중 유발 대책을 남발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우리 국토환경을 보전하고 균형 있는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수립해 이를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정도를 걸어야 할 것이다.

서왕진 환경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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