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사이버 시대 지식통합의 길 모색 '집단지성'

  • 입력 2002년 1월 18일 18시 12분


집단지성/피에르 레비 지음 권수경 옮김/ 285쪽 1만1000원 문학과지성사

윌리엄 깁슨의 공상과학소설 ‘뉴로맨서’(1984)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사이버 스페이스’ 개념은 본래 목적이었던 군사적 의미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문명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캐나다 퀘벡대 사회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인 레비는 사이버 공간이 지닌 ‘가상성’에 주목하고 이를 바탕으로 ‘집단지성’ 개념을 설파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가상성이란 ‘진실이 아님, 가짜’란 의미가 아니라, 마치 하나의 씨앗이 완전한 나무 한 그루의 형상을 갖고 있는 잠재성과 유사한 것이다. 즉, 가상성이란 실제로 존재하나 아직 펼쳐지지 않는 현실을 말하며 이는 집단지성 개념의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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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문명이래 지식의 통합을 꿈꿔 왔으며, 집단지성의 구축 노력은 10∼12세기 페르시아와 유대의 접신론(接神論) 전통과 유럽 백과전서파의 작업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집단지성은 과거의 지식체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기호적 연속체의 구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과거의 지식체계가 수직적 위계적인 나무에 비유된다면, 새로운 지성은 인터넷 공간에서 쌍방향 소통과 탈영토화로 인해 수평적으로 한없이 뻗어나가는 뿌리줄기와 같다.

다른 한편 레비의 집단지성 개념은 ‘몰(mol·분자집합의 단위)적’ 방식에서 ‘분자적’ 방식에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몰적 양태가 탈문맥적이고 영토성을 지녔다면, 분자적 양태는 다원적 유목적이다. 대량적이고 엔트로피를 낳는 몰적 방식에 비해 분자적 방식은 개별적인 능력과 효율성을 추구한다.

따라서 지식경제론이나 정보화 이론과 달리 한 개인의 자질과 능력이 중요하게 된다. 정치적 차원에서도 기존의 우민적이고 경직된 몰적 정치형태에서 개별적 참여가 가능한 분자적 정치형태로의 혁명적인 변화가 예고된다.

레비의 새로운 휴머니즘은 자연스럽게 생태적 인류학적 성찰로 이어지며 지구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윤리로 완성된다. 비유컨대, 지구는 인간의 ‘분비물’이며, 그것은 다름아닌 인류문명이란 귀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만이 지구를 인간과 동식물 그리고 신이 상생할 수 있는 무한한 변신의 공간, 즉 ‘카오스모스’로 만들 수 있다.

질 들뢰즈 철학과 테이야르 드 샤르댕의 인류학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은 집단지성 개념은 궁극적으로 인간 지식을 통합하여 인류를 인간화 과정의 마지막 단계인 ‘정신-지식계’로 고양시키려는 비전을 제시한다. 따라서 실리콘을 물적 토대로 삼는 ‘신(新) 신석기’문명인 사이버 문명이 집단지성의 비전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면 판도라 상자에 남은 마지막 희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김동윤 건국대 교수·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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