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 벤처기업 에트나진텍의 이경일 사장(49·전 고려대 교수·사진)은 미국에서는 생명공학이 정보통신 산업 이상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2000년초 400여개였던 생명공학 벤처의 수가 현재 100여개로 준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이 교수는 “생명공학 벤처를 시작한 사람은 해외파가 많은데 이들은 국내 학계에서 연고(緣故)의 벽에 부닥쳐 업계에 뛰어들었다가 그곳에서도 또다시 연고의 벽에 부닥쳐 좌절하곤 한다”고 소개했다.
이 사장은 최근 일부 벤처 기업이 저지른 행태를 보면 한편으로 울화통이 터지지만 일부만의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문을 닫은 기업 중 기술력이 탄탄한 곳도 적지 않지만 현재 자본금 5위 안에 드는 기업 중에 도저히 수익을 못낼 기업도 끼어 있다는 것.
그는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미국 뉴욕주립대, 템플대 등의 연구원을 거쳐 고려대 의대 교수로 재직했고 지난해 3월 교수직을 사퇴하고 벤처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고려대 교수 시절인 98년 4월 항암제에 내성을 가진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파괴하는 유전자치료제 ‘메드 타이거’를 개발해 동물실험에 성공했고 2000년에는 세포 혈액 등으로부터 DNA를 분리하는 키트의 상품화에 성공했다.
벤처에 뛰어든 이후에는 지난해 7월부터 미국 뉴욕의 제퍼슨 암센터의 안토니오 지오르다노 박사와 함께 ‘메드 타이거’의 추가 동물실험을 진행 중이며 최근에는 암을 치료하는 ‘DNA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이 사장은 “국내의 벤처 기업 사장은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돼야 한다”면서 자신도 투자 유치, 연구, 경영, 영업, 재무 등을 혼자서 담당하고, 청소원 역할까지 한다는 것. 그는 이런 일중에 투자 유치가 가장 힘들다면서 “벤처에 뛰어들면서 돈과 관련한 꿈을 꾸는 날이 늘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그에게 최근 미국 뉴욕, 샌디에이고, 보스턴 등에서 투자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이들의 의도가 나중에 자신의 회사가 커지면 ‘낼름 먹겠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일단 투자유치에는 긍정적이다. 어찌보면 이 사장은 이들에게 ‘먹히는 것’이 소망이다. 돈 구하러 다니는데 지쳤기 때문. 그는 월급쟁이 연구사장으로 연구에만 매달리고 싶다. 이 교수에 따르면 주위의 벤처기업 사장도 대부분 생각이 똑같다는 것.
“생명공학 벤처는 21세기 주도산업입니다. 그러나 학자들에게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국내에서 뿌리내려야 한다고 요구하지는 마십시오. 애국심 때문에 귀국했던 학자들은 지금 당장 생존의 문제에 부닥쳤습니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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