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 상사 때문이었다. 남에게는 환골탈태를 강요하고 개혁을 외치면서도 스스로는 전임자보다 더 개악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윽박지르기, 정실주의, 편가르기, 배격주의, 맹목적인 천리마운동의 강요 등등….
이런 조직에서는 정말 열심히 일하고 싶은 조직원도 역량발휘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경우가 많다. 정실주의로 조직이 운영되기 때문이다. 냉소주의가 팽배한 조직은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조직이 결코 될 수가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조직원이 각자의 능력을 100% 발휘해 조직의 목표 달성에 동참하기보다는 뒷전에서 이죽거리고 적당히 시간을 때우는 식의 태도가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예외의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냉소적 분위기는 조직원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책임자가 만든다. 그런데 문제는 장본인은 그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점검하기보다는 조직의 부실한 성과에 대한 책임을 중간간부와 조직원에게 떠넘기게 된다.
기업이든 공직사회든 이런 상사가 많은 조직은 스스로 붕괴하게 된다. 중간간부급이 그런 상사일 때는 피해가 부분에 그친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일수도 있지만 기업의 오너 또는 국가의 최고책임자가 그런 인물일 때는 그 피해는 조직 또는 국가사회 전체에 미친다. 그래서 기업이든 국가든 조직의 리더 역할은 무서울 정도다.
기자는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한 인사로부터 DJ정권의 인사편중 및 이에 대한 초기 대응전략과 관련해 뼈아픈 후회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집권 초기 광범위한 편중인사가 이루어진 자체도 잘못된 일이었지만 더욱 큰 실수는 대통령이 TV에서의 국민과의 대화 등에 출연하여 정부가 마련한 통계표 등을 내보이며 결코 편중인사는 없었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한 것이었다는 실토였다. 당시 대통령의 그러한 발언은 국민이 실제로 피부로 느끼고 있는 현실과는 너무도 달라서 엄청난 냉소주의를 낳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그러한 발언이 나올 때마다 지지율이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은 물론이다.
냉소주의는 지도자의 인식이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현실을 모르는 발언이나 지시를 할 때 급속도로 번지게 마련이다. 김 대통령은 임기 중 정부의 중대한 실책이 있을 때마다 자신이 그 책임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기보다는 남의 탓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의약분업으로 전국민적 소동이 발생했을 때는 관계장관이 잘못 보고해서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는 식으로 말했다.
새해 들어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과 뒤이은 반부패장관회의에서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벤처기업과 검찰이 잘못해서 정부가 피해를 보고있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당장 벤처업계와 검찰로부터 “도대체 누구 때문에 그렇게됐나”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 같이 잘해보자는 대통령의 회견이 또 다른 반발과 갈등을 낳고 있다.
꼭 정부와 대통령에만 국한된 말이 아니다. 정부든 기업이든 조직의 리더에 속하는 분들은 너나없이 스스로 자문해볼 일이다. 누가 냉소주의를 낳는가를….
정동우 사회2부장 foru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