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몸값 두배올리기<3>]①영어 공든탑 쌓기 열풍 "새벽부터 학원행"

  • 입력 2002년 1월 20일 17시 49분


서울시내 영어학원 새벽반에 나온 직장인들의 모습
서울시내 영어학원 새벽반에 나온 직장인들의 모습
㈜SK 특수제품 사업팀 김태희 과장(39)은 아무리 술을 먹고 새벽 2∼3시에 들어가도 반드시 1시간씩은 영어회화 테이프를 듣고 잔다.

많을 때는 1주일에 서너번씩 술약속이 있지만 1년동안 단 한번도 하루 1시간이상 영어공부 약속을 깬 적이 없다. 회사에서 김 과장만 독하게 마음먹고 영어공부하는 직원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이상할 정도다.

경력, 체력,영어실력은 최근 직장인들 자기 몸값 관리의 3대 요소. 특히 각 기업이 너도나도 글로벌화를 외치면서 직원들의 영어열풍을 부채질하고 있다.

요즘 헤드헌터들은 전직을 고려하는 직장인에게 가장 먼저 “영어는 어느 정도인가. 외국어로 마케팅할 수 있는가”라고 물어보는 게 기본이다.

▽직장인에게는 영어가 이미 제2공용어〓직장인들 마음속에는 이미 영어가 생존을 위한 제2공용어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SK는 최태원 회장의 지시로 내년부터 모든 회의를 영어로 진행한다. 참석자가 전원 한국인이더라도 영어로 회의를 해야한다. 이미 석유개발사업부의 회의 공식언어는 영어다. 회사의 공식문서에 사용되는 유일한 언어도 내년부터는 영어다.

직장인들 가운데 새벽 영어회화반에 등록하고 점심시간에는 토익 테이프 듣고 저녁에는 몇 명이 팀을 만들어 다시 외국인 강사와 함께 공부하는 직원이 적지 않다.

강남 L어학원의 신승호 실장은 “새벽 6시경에 시작하는 영어강좌반이 1000여명 가량되는데 거의 전부가 인근 직장인”이라며 “1월에는 수강신청이 밀려 돌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도 영어열풍은 대기업이나 마찬가지. 디지털 저작권보호 벤처기업인 마크애니는 퇴근시간이 지난 7시30분에 전 직원이 대회의실에 모인다. 유명 학원 강사를 모셔 단체로 영어회화 공부를 한다. 출장 나가있거나 불참 사유서를 내지 않은 직원은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한다. 이 회사 김남철 팀장은 “저녁 공부가 모자라 따로 새벽에 학원을 다녀야겠다는 직원도 있어 이들에게는 회사에서 비용을 지원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어가 안되면 일찍 회사에서 나가라〓LG그룹은 대기업 가운데 직원들에게 영어공부 스트레스를 비교적 덜 주는 기업. 일반 직원들은 토익점수로 600점 정도만 따면 충분하다. 그러나 임원이 되려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자체적으로 마련한 영어회화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기본조건에서 탈락이다.

LG화학의 김동식 차장은 “해외지사에서 몇 년간 근무했던 직원이 떨어진 사례도 있을 만큼 까다로운 수준”이라며 “실제 능력과 경력에서는 임원이 되고도 남지만 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아직 부장에 머물러 있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도 외국어 능력 그 자체가 하나의 업무능력이라고 판단, 영어시험을 승진 점수에 반영하고 있다. 토익기준 800점 이상이면 가산점을 주는 반면 400점 이하면 감점요인이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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