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후 현대투신 하이닉스반도체 대우자동차 등 주요 구조조정 대상 회사에 관해 ‘될 듯 말 듯’한 소식만 10여 차례나 반복해 들었던 증시 투자자들로서는 짜증스러운 일.
물론 정부의 잘못된 판단과 성급한 발표가 이런 혼란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정부 발표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하지 못한 증권 전문가들의 능력 부족도 혼란의 또 다른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부정확한 소식에 춤춘 증시〓구조조정과 관련해 증시가 가장 들떴던 때는 지난해 5월말∼6월초. 대우차가 GM과 공식 매각 협상을 시작하고 6월15일 하이닉스반도체가 대규모 해외주식예탁증서(GDR)를 발행하면서 증시 전문가 사이에서 “한국 증시 대세 상승이 시작됐다”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종합주가지수는 600을 돌파한 상황. 구조조정 재료에다 저금리 상황까지 겹치면서 고객 예탁금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증시는 15일 이후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결국 7월 중순까지 한달여 동안 하락을 거듭했다.
이 밖에도 대우차나 하이닉스에 관한 구조조정 관련 소식이 나올 때마다 증시는 귀를 솔깃했다가 실망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정보 분석 능력의 부족〓AIG컨소시엄과 현대투신의 매각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는 낙관적 소식이 판을 치던 지난해 8월 중순, 한 은행장은 사석에서 “이번 협상은 절대 쉽게 타결 안 된다. AIG가 얼마나 악명 높은 회사인데…. 두고 봐라. AIG가 별별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어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인 23일 두 회사의 매각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 은행장의 비판은 묻히는 듯했다. 그러나 5개월이 지난 지금 그의 예언은 모두 적중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증시에서는 이 은행장의 주장 같은 비판적인 분석이 공개적으로 이뤄지지 않었다.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던 8월23일에는 정부의 발표를 100% 믿은 전문가들의 ‘협상 타결이 증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분석이 20여건 쏟아졌을 뿐이었다.
하이닉스와 대우차 매각 협상 발표 때도 마찬가지. 정작 미국에서는 “협상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한국 증시는 ‘협상 타결이 미치는 영향’만을 분석하기 바빴다. 구조조정과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최상의 경우와 최악의 경우를 모두 다뤄야 하는데 한국 증시는 너무 ‘긍정적인 분석’에만 집착했다는 지적.
신한증권 박효진 투자전략팀장은 “기업의 매각이나 인수합병 등에 관해 세계적인 안목을 가진 증시 전문가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지난해 발표된 주요 구조조정 사안 및 증시 반응 | |||
회사 | 날짜 | 사안 | 증시 반응 |
대우차 | 6월4일 | GM과 공식 매각 협상 시작 | 대우차 구조조정 관련 수혜주 거론 |
9월21일 | GM과 양해각서(MOU) 체결 | 미국 테러 이후 주가 급락 계속 | |
하이닉스반도체 | 6월15일 | 해외주식예탁증서(GDR) 발행 | 증시 대세 상승 계기라는 전망 나옴 |
11월20일 | 채권단, 출자전환 및 부채 탕감액 확정 | 은행주 상승 시작 | |
12월3일 | 마이크론과 전략적 제휴 방침 발표 | 종합주가지수 650 돌파. 본격적인 연말 랠리 시작 | |
현대투신 | 8월23일 | 정부, AIG컨소시엄과 현대투신 외자유치 MOU 체결 | 22일 현대투신 매각 임박 소식에 현대 관련주 일제히 급등 |
8월24일 | AIG, 현대증권 신주인수가격 하향 조정 요구 | 현대 관련주 급락 반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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