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근기자의 여의도이야기]'늑대'야 오건 말건

  • 입력 2002년 1월 21일 18시 01분


지난 주말 현대투신 매각 협상이 깨졌다는 소식이 증권가에 전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증시가 크게 타격을 입었을 만한 소식인데도 이번에는 별 반응이 없었다. 소식이 전해진 당일 종합주가지수는 0.7% 정도 떨어지는 데 그쳤다.

주식시장의 체력이 강해진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그럴 줄 알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게 더 큰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협상이 진행돼온 1년 반 동안 “가격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에 협상이 삐걱거린다” “AIG의 요구가 너무 지나쳐 협상이 완전히 물건너갔다” 등 온갖 잡음이 많았기에 예견된 결과로 받아들인다는 것.

그런 의문이 제기될 때마다 정부는 “약간의 갈등이 있지만 본계약 체결에는 문제 없다”며 큰소리를 쳐왔다. 비단 현대투신 매각 건뿐만 아니라 다른 매각 협상에서도 정부는 항상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결과는 대부분 시원치 않았다. 그래서 이번 협상 결렬 소식에 사람들은 또다시 정부를 ‘양치기 소년’에 빗대 비아냥거리고 있다. ‘늑대가 나타나건 말건’ 비슷한 얘기를 계속 듣는 게 이제는 지겹다는 반응이다.

이번 결과가 당장 주식시장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을 일은 아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 현안이 해결되지 않고 계속 증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한 한국 증시는 현재 수준에서 못 벗어난다”고 꼬집었다. 투자자들이 바라는 ‘1000포인트대 지수’도 먼 얘기다.

벌써 파생되고 있는 부작용도 적지 않다. 현대증권이나 하이닉스 주식에 투기성 투자가 몰리는 것이 단적인 예다. 많은 데이트레이더들이 협상 과정에서 나오는 온갖 ‘설(說)’을 재료삼아 초단기 매매를 하고 있는 것. ‘협상 추진설’에 주식을 샀다가 ‘난항’이라는 소문에 팔고 ‘협상 재개’ 가능성에 다시 재빠르게 매입하는 식이다.

이런 단타족들은 이번 협상 결렬 소식을 반기고 있다. 지난 주말부터 “현대증권은 지금이 매수 적기”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새로운 협상이 시작돼서 한동안 진행될 것이므로 얼마나 많은 재료가 또 쏟아져 나오겠느냐는 얘기다. 이런 와중에 순진한 투자자들만 또 골병 든다.

정상화 가능성을 믿고 순수하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한 사람들의 가슴졸임이 더이상 오래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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