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배종대/안정남 前국세청장 수사하라

  • 입력 2002년 1월 21일 18시 01분


안정남 전 국세청장이 지난해 11월 비밀리에 캐나다로 출국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드는 느낌은 두 가지다. ‘세풍’의 핵심인물인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다음은 ‘또 빼돌리기인가’하는 의구심이었다. 이 전 차장은 1997년 대통령선거 당시 권력을 이용하여 160억원이라는 선거자금을 강제 모금하고, 1998년 검찰의 수사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4년여 동안이나 도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두 사람은 정권의 중심에서 국가 핵심권력의 하나인 조세권을 쥐락펴락했던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제 도피라는 공통점을 하나 더 갖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자연인으로서 두 사람 개인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 단지 그들이 매우 중요한 공직에 있었고, 그 공직을 이용하여 불법한 행위를 하였는데, 다른 일반 시민들처럼 국세청의 세무조사나 경찰·검찰의 수사를 제대로 받고 있는가 하는 점이 궁금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그것이 앞으로 우리나라에 미칠 나쁜 영향이 걱정일 뿐이다.

▼비밀리 출국…또 빼돌리기?▼

안 전 청장은 본인의 말대로 ‘이기붕 집에 불을 사르는 기백과 용기’를 가지고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어떤 기업이나 개인을 막론하고 위법행위를 했으면 추징이나 처벌을 받아야 하는 점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언론사라고 하여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문제는 이 기준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가 하는 법의 형평성이다.

안 전 청장은 지금 서울 강남에서 가장 뜬다고 하는 대치동에 본인, 형제, 매부, 사위 등의 이름으로 5필지 388평의 가족타운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지난해 9월 이 문제로 건설교통부 장관직에서 물러날 때의 시가가 50억원이었다고 하니 폭등할 대로 폭등한 지금의 시점에서는 그 이상일 것으로 짐작된다. 몇 차례에 걸친 빗나간 해명이 있긴 하였지만 매입 당시 연봉 500만원에 불과했던 국세청 과장이 어떻게 수억원의 부동산 구입비를 마련할 수 있었던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미 오래된 일이고 시효가 지났다는 말로 변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국민간의 신뢰관계는 법적 책임을 최소한의 요건으로 하고 도덕적 책임이라는 더욱 포괄적인 요구에 의해 그 깊이를 더하게 된다. 이 정부가 국민을 주인으로 생각하는 민주성과 도덕성을 진정으로 가지고 있다면 경제나 교육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대다수의 국민에게 이 사건의 전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설명의 주체는 국세청이나 검찰, 경우에 따라서는 청와대가 되더라도 상관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요구는 쓸데없이 옛날 일이나 들추어내는 퇴행적인 것이 아니라 곧 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초석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 이 정부의 임기는 1년 남짓밖에 남아 있지 않다. 현 정부가 역사상 성공한 정권으로 기록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국민 모두의 염원이다. 그리고 이 정부의 경제위기 극복, 민족화해 등의 공적이 각종 게이트로 퇴색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국민의 행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실추된 국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부정부패 환부 도려내야▼

믿음의 회복은 곧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인데, 이 일은 정부가 스스로 정직한 언행을 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 짧은 기간 정권을 재창출하여 그 안에 안주하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말고 차라리 떳떳하게 역사의 심판을 받겠다는, 사즉필생의 각오로 국정에 임하면 반드시 살 길이 열릴 것이다. 온갖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사과하고, 말뿐인 엄정 수사의 의지를 표명하는 관행을 반복하지 말고 스스로 자신의 몸에서 부정부패의 환부를 도려내는 아픔을 감내하는 자발성이 있어야 한다. 국민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그러한 손길이 미칠 때 국민의 마음은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게이트공화국의 오명은 벗어 던지기 어렵다. 우리가 안 전 청장의 해외도피를 보통사람들의 해외여행처럼 예삿일로 보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배종대 고려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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