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얼굴 생김새는 달라도 풍기는 인상이나 말투가 너무도 닮은 부부들을 주변에서 흔히 본다. 반드시 부부가 아니라 애인으로 범위를 넓혀 놓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사랑이 그들을 닮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서로 닮은 사람들끼리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스티븐 소더버그의 데뷔작이자 저예산 영화의 신화로 꼽히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Sex, Lies and Videotape·1989)’는 이 까다로운 질문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네 명의 캐릭터는 저마다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사랑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들 모두를 묶는 키워드는 놀랍게도 ‘거짓말’이다.
처제와 붙어먹으며 빤한 거짓말을 일삼는 존(피터 갤러거)이 가장 저급한 거짓말쟁이라면, 일견 화냥년처럼 보이는 신시아(로라 샌 지아코모)는 내심 언니보다 우월해지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리고 있는 귀여운 거짓말쟁이다.
앤(앤디 맥도웰)과 그레이엄(제임스 스페이더)의 거짓말은 보다 심층적이다. 앤은 스스로에게 행복하다고 최면을 걸고, 그레이엄은 하찮은 일(여자들의 섹스 경험담을 녹취하는 것)에 몰두하며 자신을 잊으려 한다. 요컨대 그들은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각할만큼 지독한 거짓말쟁이인 것이다.
안정된 중산층 가정의 평범한 주부와 기괴한 취미를 가진 자폐적 떠돌이, 겉보기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남녀는 만남이 잦아지면서 서로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실존적 상처를 알아본다. 이 영화에서 사랑이란 자신에게 결핍된 나머지 반쪽을 찾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마치 거울을 직시하듯 자신과 똑같은 결핍으로 고통받으면서도 그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상대방을 알아보고 그에게 진실을 일깨워주는 행위다.
진실을 환영하는 자는 논리학자들뿐이다. 대부분의 경우 진실이란 고통스런 탈각을 요구한다. 영화 속에서 앤은 존과 이혼하고, 그레이엄은 수년간 정성을 쏟아온 비디오테이프 콜렉션을 부셔버린다. 거짓말의 편안한(!) 세계를 박차고 나온 그들은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앤은 말한다. “비가 올 것 같아요.” 그레이엄이 대답한다. “벌써 오고 있어요.”
심산<시나리오작가> besmart@n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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