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차두리가 누구야?

  • 입력 2002년 1월 22일 10시 10분


옆에서 TV를 함께 보던, 평상시에는 축구에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이 묻는다.

"차두리? 차두리가 누구야?"

"차범근 아들이야. "

"정말? 우와~"

차두리를 설명하는 제1 관문은 아마도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차두리가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것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리고 굳이 차두리를 아버지의 틀 안에서 마냥 이쁘게 봐 줄 것도 없지만, 어쨌든 '차범근표 차두리'는 그에게 있어서 'Made in Korea'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일요일 아침, 전에 없이 부지런을 떨면서 TV 앞에 앉았다. 나름대로 집중을 해서 보려고 애썼지만 별로 신통한 것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기였다. 선수들이 하나 같이 무겁고 딱딱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미국은 홈 팀이면서도 우리를 확실하게 압도하지 못하는 모습이었고… 한 마디로 시작부터 별로 재미있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기였다. 그 때 옆에서 함께 TV를 보던 와이프가 질문을 던졌다.

"20번 쟤 누구야? 동국이 아닌거 같은데?"

"차두리!"

"정말? 잘하네…"

음… 비교적 양호한 질문과 대답이란 생각이 든다. '차범근'이라는 단어 없이 차두리가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말이다.

그런데, 더욱 재미 있는 것은 필자의 기억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15년, 20년 전 쯤의 한 축구 선수가 그대로 경기장에 있었다는 것이다. 외모도 외모였지만 측면을 따라 용수철 처럼 튀어 나가는 모습은 영락없는 차범근의 모습이었다. 너무 어린 시절에 차범근을 좋아했기 때문에 차범근에 대한 기억의 대부분은 그저 무지하게 빠르다는 것 뿐이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오른쪽 터치 라인을 질주하는 차범근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골도 많이 넣고 헤딩도 많이 했을텐데 말이다.

아마 당분간 스포츠 신문과 축구계의 키워드는 '차두리'가 될 것 같다. 일단은 아버지의 후광 때문에 관심을 끄는 선수로 다가왔고, 대표팀에서 몇 차례 얼굴을 내민 지금은 그의 성장과 잠재능력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차두리라는 키워드는 더 자주 우리들 입에 오르내릴 것 같다.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차두리의 맹활약으로 우리 팀이 선전을 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아시안 게임에서는 차두리 또한 당당히 설기현, 이동국을 필두로 최태욱, 이천수 같은 그 또래의 젊은 영웅들과 자웅을 겨룰 수 있을 것 같다. 계속해서 대표팀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면 1998년의 이동국 신드롬을 능가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렇게 풀 뿌리 같은 축구 풍토에서도 굵직한 선수들이 꼬박꼬박 나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우선 당장은 대표팀에 그 이름을 올려 놓는 것이 차두리로서는 가장 큰 과제로 보인다. 차두리로서는 프로 선수가 아니라는 점이 하나의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수준 도약을 한 상태에서, 소위 그 물(?)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젊은 선수에게 너무도 큰 손실이다. 프로 선수라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경기를 꾸준히 소화하기 때문에 발전의 기회는 계속해서 열려 있겠지만, 평범한 대학 선수로 돌아간다는 것은 경기력의 둔화를 가져오기 쉽다. 더욱이 청소년 대표를 거치지 않은 차두리로서는 국제경기 경험에서도 이천수나 최태욱 같은 선수들에 비해 핸디캡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팀의 든든한 카드 중 하나로 써먹을 수 있다면 걱정할 것이 뭐가 있을까만… 현실적으로 그런 이상적인 모델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분명히 현재 수준에서 그를 능가하는 선수들이 대표팀에 많이 있으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 선수들에게 먼저 기회가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비관적으로 말한다면 월드컵 출전 직전에 차두리라는 이름이 대표팀 명단에서 빠질 수도 있다. 결코 이런 일이 차두리 본인이나 그를 지켜보는 우리에게 부자연스럽지만은 않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문제는 2002년이 아니라 그 후가 차두리의 황금기라는 것이다. 그 때의 주축 세력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는 월드컵 출전이나 활약 여부에 상관 없이 지금 보여주는 것 이상의 발전을 이루어 내야 할텐데… 현역 대학 선수로 묶여 있는 차두리로서는 수준 있는 경기 경험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길이 약 1년 동안은 대표팀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천수 프로 입단, 김용대와 현영민은 졸업반으로 프로 입단 예정)

다른 선수들은 설사 대표팀이 아니더라도 프로 무대를 통한 발전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겠지만, 차두리로서는 대표팀에 남다른 집착을 보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코 대학 축구를 깔보는 투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프로와 대학 사이, 고려대와 대표팀 사이에는 엄연한 수준의 차이가 있으며, 그 수준을 올라서는 단계에 있는 선수에게 있어서 어느쪽 물에 발을 담그는가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 유일한 해답은 대표팀에 꾸준히 자기 자신을 각인 시키는 것이다. 설사 월드컵 명단에서 제외 되더라도 아시안게임 때에는 다시 이름을 올릴 수 있을 만큼의 강한 인상과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어제 다르고 오늘 또 다른 루키를 바라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하물며 좀 더 훤칠하고 도회풍의 세련미가 풍기는 21세기형 차범근 신모델을 보는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비록 많은 경기를 보지는 못했지만 차두리는 잠재 가능성이 매우 큰 선수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축구 선수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면서 최대의 무기인 체격과 스피드, 힘, 유연성 같은 것들을 이미 가졌다는 점이다. 청소년 대표를 거치지 않은 선수임에도, 그리고 최근 1년 여의 부상 공백을 겪은 선수임에도 A-매치에서 그토록 빠른 적응과 발전을 하는 것은 더욱 놀랍기만 하다.

이제 차두리에게 남은 과제는 현재 수준의 성장 페이스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차두리가 월드컵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를 기대하기에 앞서서, 그가 2002년에 이루어야 할 성장의 과정을 세심하게 살펴 주는 것이 우리 축구팬들이나 차두리 본인에게 있어서 더욱 중요하지 않나 생각된다. 2002 월드컵이 아니라 2006 독일 월드컵을 위해서, 그리고 설기현, 이동국, 이천수, 최태욱, 현영민 등과 함께 열어갈 다음 대표팀의 영광을 위해서 말이다.

우리는 또 한 명의 듬직한 루키를 얻었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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